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프랑스 요리 레스토랑 ‘랩24’ 오너 셰프 에드워드 권(45)은 지난해 12월 4000만원을 투자해 식기를 교체하고 주방과 서비스 인력 6명을 보강했다. 올해 ‘전세계 미식가들의 성서’로 불리는 미슐랭 ‘레드가이드’ 심사관들이 서울 레스토랑 암행 평가에 착수한다는 매일경제신문 보도(2015년 11월 24일자)를 접한 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프랑스 타이어 기업 미슐랭의 식당 평가서 레드가이드는 까다롭고 엄격한 미식가들이 레스토랑 음식 맛과 서비스, 가격, 분위기 등을 철저하게 평가해 별점을 부여한 책이다. 별점 등급 ‘미슐랭 스타’는 1개(★)부터 최상등급인 3개(★★★)까지 준다. 올해 서울과 중국 상하이 식당을 평가해 별점 등급을 매긴 레스토랑 평가서 레드가이드를 연말에 발간할 예정이다.
이미 서울 특급호텔과 유명 레스토랑들은 자존심과 명운을 걸고 ‘미슐랭 별 따기’ 전쟁에 돌입했다. 정보 입수가 빨랐던 레스토랑들은 지난해부터 신메뉴 개발과 인테리어 공사, 테이블 장식과 식기 교체, 서비스 보강 등에 나섰다. 미슐랭 스타를 받으려면 베지테리언(채식주의자) 메뉴와 알러지 표시 등 세심한 메뉴판 작업도 필요하다. 서양 요리 레스토랑은 와인 소뮬리에 2명도 채용해야 한다.
권 씨는 “서양 요리에 대한 평가는 더 냉정하고 까칠하기 때문에 긴장하고 있다”며 “꽃 장식과 서빙 속도, 코트와 우산 태그 서비스 등 디테일한 곳까지 바꾸고 있다. 미슐랭 스타를 받으려면 그 만큼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 청담동에서 유럽식 파인다이닝(정찬) ‘리스토란테 에오’를 운영하는 어윤권 셰프(45)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 포시즌호텔 조리장을 역임한 그는 “미슐랭은 가공품이나 첨가물의 사용을 가장 큰 탈락 기준으로 치기 때문에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게 제일 중요하다”며 “제철 재료를 유럽 사람뿐만 아니라 한국인들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재료 조합 실험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슐랭 평가에 한식이 유리하다고 본다. 실제로 미슐랭의 일식 평가도 관대한 편이었다. 지난 2007년 ‘미슐랭 레드 가이드-도쿄편’에서 별 3개를 획득한 일식당은 12곳으로 뉴욕 6곳보다 더 많았다. 현재 미슐랭 스타 3개 레스토랑은 전세계에 50곳에 불과하다.
미슐랭 진출 소식에 특급호텔에서 외면받던 한식당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한식당 ‘무궁화’는 외국 관광객이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코스 요리를 개발하고 와인 리스트를 강화했다.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한식당 ‘라연’은 퓨전보다는 전통 한식 메뉴에 더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조리서인 ‘수운잡방’ 전통을 이어온 광산 김씨 종가의 종부 김도은씨를 초청해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넣지 않는 한식을 개발했다.
서울 삼성동 파크하얏트서울도 외국인들을 위해 삼계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삼계구이와 더덕불고기, 불닭 클럽샌드위치, 떡갈비 버거 등을 내놓고 있다.
서울 도산공원 인근 ‘가온’과 한남동 ‘비채나’ 등 한정식 레스토랑을 운영해온 조태권 광주요 회장(67)도 최근 인테리어를 바꾸고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한식 세계화 노력을 계속해왔다”며 “미슐랭 레드가이드 서울편이 발간되면 5년안에 한국 외식산업이 2배 이상 성장할 것이며 국내 식당들의 기준도 미슐랭에 맞춰 크게 변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115년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미슐랭 심사단은 10년 이상 호텔과 레스토랑에 근무한 전문가 100여명으로 구성된다. 다양한 인종이 포진해있으며 신상은 철저히 비밀로 부쳐진다. 이들은 2명씩 짝을 이뤄 손님으로 가장한 후 1년 동안 5~6차례 같은 레스토랑을 방문해 시식한 후 공정하게 평가한다.
[전지현 기자 / 서진우 기자 / 박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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