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액 3조원에 육박하는 대상그룹 본사 건물이 정말 맞을까?’
서울 동대문구 천호대로에 위치한 6층 높이 대상 빌딩(연면적 4246㎡)은 ‘식품 명가’ 명성에 걸맞지 않게 너무 소박하다. 지나가는 사람이 깜짝 놀랄 정도로 낡고 허름하다. 1973년 준공한 후 내부 인테리어만 바꿨을 뿐, 흰색 외관은 42년째 그대로다. 왜 여느 기업들처럼 번듯한 빌딩으로 재건축하지 않았을까.
1956년 국산 조미료 1호 ‘미원’으로 사업을 시작한 임대홍 창업회장(95)의 뜻을 받들기 때문이다. 평생 근검 절약을 실천하고 연구개발에만 몰두한 임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자랑하거나 내세우는 일을 철저히 배제하고,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회사를 직접 이끌던 때 출장을 나가도 숙박료 5만원 이상 숙소에는 묵지 않은 일화가 유명하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는 승용차보다는 대중교통을 더 많이 이용했을 정도로 검소했다.
쉽게 바뀌지 않는 사람들 입맛에 맞춰온 장수 식품 기업 경영은 보수적이다. 건물 신축보다는 내실 경영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대상 뿐만 아니라 롯데그룹의 산실이 된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롯데리아 본사 건물(연면적 1295㎡)과 서대문구 통일로 사조그룹 본사 건물(연면적 7260㎡)도 회사 매출 규모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다. 하지만 그 오래된 건물에 깊은 경영철학이 담겨 있다. 무리한 부동산 개발로 휘청거리는 회사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대상 창업주의 내실 경영은 아들인 임창욱 명예회장에 이어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내년에 창립 60주년을 앞두고 있지만 이렇다 할 사사 한 권 없는 이유다.
4층 높이 롯데리아 본사 건물은 지난해 매출액 1조1330억원에 걸맞지 않을 정도로 낡고 허름하다. 1967년 준공 후 내부만 리모델링하고 외부 벽돌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이 초라한 건물이 바로 롯데그룹의 모태인 롯데제과가 출발한 곳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93)이 과자 사업을 처음 시작한 상징적인 건물이라 보존하고 있다. 1967년 ‘햇님이 준 선물’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자본금 3000만원으로 출발한 롯데제과는 오늘날 계열사 89개를 거느린 재계 5위 굴지 그룹(지난해 매출액 83조300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그 역사와 전통, 사업 초심을 지키기 위해 향후 이 건물을 박물관으로 만드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롯데리아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대박이 나서 롯데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웠기 때문에 풍수지리학적으로도 좋은 터”라며 “잠실 롯데타워가 완공되면 그 곳으로 이전할 수도 있지만 지금 롯데리아 건물은 안 팔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매출 2조5000억원을 올린 사조그룹 본사는 1947년 준공된 6층 건물이다. 선친인 고 주인용 창업주의 갑작스러운 타계 후 29세에 가업을 물려받은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66)은 1979년 이 건물에 터를 잡았다. 그는 선친 책상과 소파를 그대로 쓸 정도로 정신이 몸에 배 검소하다. 68년 된 본사 건물에 대해 “아직 쓸 만하다”며 재건축을 고려하지 않는다.
서울 용산구 백범로에 위치한 6층 높이 오리온 본사는 1930년대에 지어졌다. 정확한 준공년도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건물이 바로 중국과 러시아, 베트남 시장을 제패한 글로벌 과자 회사의 산실이다. 지난해 국내외에서 매출액 2조4600억원을 올렸다. 창업주 이양구 선대 회장(1916∼1989)은 1956년 풍국제과를 인수하면서 이 건물에서 오리온을 출범시켰다. 지하주차장과 엘리베이터가 없고 사무 공간이 너무 낡아 현재 내부 리모델링을 진행하고 있다.
[전지현 기자 / 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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