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경제 구조가 2011년을 기점으로 급변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부 기업과 개인은 아직까지도 과거의 행태를 답습하고 있어 문제를 더욱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2011년 이후 우리경제의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나타내는 잠재성장률은 4%대에서 3%선으로 급속히 떨어졌다. 물가상승률도 3%에서 2%로 급락했다. 경제내의 중요한 수요기반인 35세~55세 연령층의 인구는 이 때를 기점으로 하락세로 반전됐다. 반도체 조선 자동차등 주요 업종의 기술력은 떨어지면서 성장동력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제구조는 급속히 변했지만 정부와 한국은행등 정책당국은 경제의 구조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단기적인 부양책만 남발해 화를 키웠다.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정부, 기업, 개인들의 혁신적인 인식과 행동의 변화가 없다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3일 정부와 한국은행 및 각종 연구기관등에 따르면 우리경제의 구조는 지난 2011년을 기점으로 급변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같은 구조 변환은 최근 들어서야 비로소 확인됐다. 한은 관계자는 “각종 데이타를 수립과 검증등으로 경제 구조의 변화를 감지하는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은 우리경제의 잠재성장률이 3%선까지 하락한 것으로 추산했다. 불과 2년 전인 2013년만해도 우리경제의 잠재성장률은 3.7%로 추정됐으나 최근 이 수준을 크게 낮췄다. 잠재성장률은 물가상승등의 부작용이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이다. 김성태 KDI 박사는 “인구 고령화와 기업 비효율성 증가등으로 우리경제의 잠재성장률 수준이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성장률뿐만 아니라 우리경제의 구조를 반영하는 물가상승률도 3%대에서 2%선으로 하락했다. 한은은 “2011~2012년 중 인플레이션 수준에 구조적 단절이 발생했다”며 추세인플레이션율이 2%대로 하락했다고 밝혔다. 추세인플레율이란 한 경제의 중장기적인 인플레율을 추산한 것이다.
잠재성장률과 추세인플레율의 하락은 우리경제가 2011년 들어 저물가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된 것을 보여주는 지표다.
구조변화를 야기한 요인으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줄어든 점이 우선적으로 꼽힌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위축되면서 성장률이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며 “한국은 이 같은 흐름이 2010년이후 집중적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흐름의 변화와 함께 국내에서도 구조 변화를 촉진한 요인들이 발견된다.
우선 35~55세 인구가 2012년부터 줄어들면서 우리 경제 내부의 수요기반이 약해졌다. 김대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 연령층은 주택을 주로 사들이는 연령층”이라며 “이들 인구가 줄면서 주택수요가 줄어들고 이는 경기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이 연령층의 인구는 계속 줄어들 것으로 보여 우리경제의 수요기반은 갈수록 취약해질 전망이다.
기업 구조조정을 게을리 한 것도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킨 원인이다. 한 전직 금융통화위원은 “2008년에 조선업의 수주 감소로 이 업종이 향후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보고를 받은 적이 있다”며 “하지만 이 같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기업구조조정은 이뤄지지 않아 최근 조선업 사태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금융위기 이후 각종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기업은 구조조정에 미온적이었고 정부도 이를 적극적으로 유도하지 않았다. 이 같은 요인이 시차를 두고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이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지 못한 점도 우리경제의 체질을 약화시켰다. 금융위기 이후 이명박 정부는 ‘녹색성장’,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라는 화두를 던졌지만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하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우리기업들의 기술경쟁력이 눈에 띄게 줄어든 점도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은 원인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부주도, 재벌 중심의 성장 전략이 단순 조립형의 최종재 산업 위주이며 중간재 등 고부가가치 사업에서 새로 진입하는 기업이 없어서 기술력을 축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2011년 이후 돈을 풀어 경기를 띄우는 정책에만 급급해 성장 잠재력 하락을 부추겼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는 2011년 이후에도 매년 경제운용 계획을 작성하면서 4%대의 실질성장률을 목표치로 제시했다. 한은은 3%대의 물가상승률을 목표로 잡았다. 실제 우리경제는 3%의 성장과 2%의 물가상승률을 유지하는 것도 벅찬 상황이었음에도 정책 목표는 턱없이 높았다. 이 때문에 실제 성장률이 목표치에 못 미치면 정부와 한은은 돈을 풀었고 정부가 거둬들일 세금도 과도하게 높게 잡아 만성적인 세수부족 국가로 전락시켰다. 배상근 부원장은 “정부가 경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식했지만 실행력이 너무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정책의 변화와 더불어 기업과 개인들의 혁신적인 행동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박사는 “기업은 사내유보금 등을 쌓아놓고 있으니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않고 시중 자금은 가계대출 등을 통해 부동산으로 흘러가고 있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비정규직에게도 ‘동일임금 동일노동’을 지급해 실질임금을 늘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상인 교수는 “우리 경제가 추격형 경제였던 시기에는 재벌주도의 경제방식이 우월하지만 현재 우리는 혁신형 경제로 나아가야 하는 시기임에도 과거의 성장전략을 답습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혁신형 경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산업 진입과 퇴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태 박사는 “정규직 과보호로 인해 경기가 좋을 때도 기업이 고용을 늘리지 않는 게 우리경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안으로 현 정부가 제시한 4대 구조개혁과 보조금 개혁을 제시했다. 김 박사는 “생산성이 낮은 중소기업이 보조금으로 연명하면서 과도하게 질 나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며 “전반적인 자원배분의 효율성 관점에서 제도를 재설계하고 보조금은 없애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노영우 기자 /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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