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사업은 그야말로 우리 토종 중소·중견 제조업체들의 브랜드를 글로벌화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사업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수익성을 쫓기 보다는 천천히 소비자의 마음을 얻는 우보천리(牛步千里) 전략으로 세계인이 인정하는 명품가방으로 도약하겠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가죽가방 제조업체인 삼덕상공 김권기 대표는 “우리나라 면세점은 대기업이나 해외 명품 브랜드들의 각축장이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한국가방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이기도 한 그는 국내 토종 중소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베이스캠프로서 면세점의 위상을 제대로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삼덕상공은 고급 가죽가방 브랜드 ‘케룹(CHERUB)’을 10월 초 개장하는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인천공항면세점 중소기업권역 운영권을 획득한 에스엠면세점의 주주사로 참여하면서 얻은 기회다. 케룹은 그동안 제품별로 제각각 쓰던 5개 브랜드, 즉 킴불스(남성 서류가방)·피지카토(여성 핸드백)·야나(여성 백팩)·브리오(영캐주얼 가방·파우치)·제필(친환경 리필 가방)을 통합한 브랜드다. 국내 판매를 넘어 외국인을 상대로 한 면세점 판매를 본격화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김 대표는 “케룹은 현재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 않지만 별다른 홍보 없이 온라인 주문만 받는데도 입소문을 타면서 마니아층 사이에서는 인기 가죽제품으로 통한다”면서 “가죽장인이 한 달에 20개씩 소량만 생산하는 남성용 서류가방은 주문 후 한 달은 기다려야 받을 수 있을 정도”라고 강조했다.
경기도 수원과 파주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케룹의 특징은 크게 4가지다. 첫째, 원부자재가 최고급이다. 비싸기로 유명한 이태리산 소 뱃가죽과 스위스산 금속잠금장치, 독일산 실, 일본산 바늘로 제조한다. 케룹 가격이 70만~120만원대인 이유다. 둘째, 장인이 100% 수작업으로 만든다. 가방 표면의 빗살 무늬는 매우 독특한데, 장인이 하나하나 손으로 비벼 무늬를 낸다. 손으로 종이를 비비면 구겨진 무늬가 생기는 것과 같은 원리다. 셋째, 가죽 가방의 끝부분을 재봉질한 후 깔끔하게 붙이는 ‘트리밍’ 기술이 독특하다. 두개의 가죽이 붙는 끝부분을 특수화학약품으로 처리하는데, 60년 이상 가죽으로 권총집을 만들면서 보유하고 있는 기술이다. 넷째, 평생 애프터서비스를 보장한다. ‘한번 사면 죽을 때까지 평생 쓴다’는 자신감의 발로다.
1948년 창업한 삼덕상공은 대전역 인근에서 가죽공방을 열고 미군에게 권총집을 수리·판매하기 시작했다. 전쟁 여파로 군수품 수입이 어려워지면서 미군이 이 회사의 가죽제품을 애용했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수차례 폐업위기를 겪은 뒤 1961년 서울로 올라와 회현동에 가죽공방 삼광사 문을 열었다. 그때부터 뛰어난 실력으로 미군과 국군의 주요 납품처로 떠올랐다. 10년간 납품한 덕에 1972년에는 당시 신설된 국방부 조달본부(현 방위사업청)가 지정한 납품자격 1호 업체가 되기도 했다. 100억원대인 매출은 국군과 경찰에 납품하는 장구류가 60% 가량을 차지하며, 나머지는 기타 공기관·민간회사 납품 물량이다.
김 대표는 “가방산업은 한국인의 감성과 기술이 결합해 패션 한류를 일으킬 수 있는 분야”라면서 “면세점 판매를 통해 케룹 브랜드의 품질과 서비스를 차근차근 높여가다보면 세계인에게 명품으로 각인될 날이 오지 않겠느냐”며 활짝 웃었다.
[민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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