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회장의 구속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한화그룹은 어떤 기업일까요?
한화그룹은 화약과 방위산업을 기반으로 국민의 세금에 의해 성장한 재계 10위의 그룹입니다.
함영구 기자가 한화그룹의 역사를 되돌아 봤습니다.
한화그룹의 모태가 되는 한국화약은 한국전쟁 중에 태어났습니다.
1952년, 고 김종희 회장은 한국경제 복구를 기치로 내걸고 인천에서 한국화약을 창업했습니다.
하지만 1981년 설립자인 김종희 회장이 갑작스럽게 타계했습니다.
후계 체제가 준비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김 전회장의 죽음은 장남 김승연 회장이 새로운 총수에 오르는 계기가 됐습니다.
29세에 총수에 오른 김승연 회장은 동생인 김호연 빙그레 회장과 오랜 기간 경영권 분쟁을 겪기도 했습니다.
어렵게 경영권을 장악한 김승연 회장의 취임 이후 한화그룹은 새로 태어났습니다.
1982년 김 회장은 한양화학을 인수하면서 중견기업에서 탈피한데 이어 재계 10대 그룹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어 1992년 사명을 한국화약에서 주식회사 한화로 바꾸고 본격적인 인수 합병으로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한화국토개발의 전신인 전아그룹과 한화유통의 전신인 한양유통을 인수하면서 사업 영역을 확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 김승연 / 한화그룹 회장
-"우리 모두 있는 힘과 지혜를 다하여 죽을 각오로 새로 태어납시다. 그리하여 우리힘으로 우리 모두가 세계 누구에게도 자랑할 수 있는 새로운 한화 그룹을 창조합시다."
이후 한화그룹은 금융, 전자, 유통, 레저, 사회복지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습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한화그룹은 그룹의 주력인 정유사업을 매각하는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들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한화그룹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투자원칙 아래 미래 성장산업인 금융, 유통, 레저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인터뷰 : 이병욱 / 전경련 상무
-"모든 비수익 자산을 정리함으로써 2년만에 1999년도 말에는 외환위기를 가장 먼저 극복한 기업으로 선언할 수 있는 단계까지 구조조정을 잘한 기업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후 한화그룹은 대한생명 인수에 '올인'했습니다.
인터뷰 : 함영구 / 기자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이곳 금융감독위원회를 직접 찾아 입찰 제안서를 제출할 정도로 대한생명 인수에 강한 애착을 보였습니다."
3년뒤인 2002년, 한화그룹은 꿈에 그리던 대한생명을 품에 넣었습니다.
제조업, 유통·레저에 머물던 한화그룹이 금융이라는 신성장엔진을 달며, 재계 서열 10위에 올라선 것입니다.
이후에도 한화는 개혁과 혁신을 강조하며 세계적인 기업으로의 도약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특히 올해초에는 10% 수준인 해외 부문의 비중을 2011년까지 40%로 늘리겠다며 글로벌 경영을 적극 추진해왔습니다.
인터뷰 : 김승연 / 한화그룹 회장
-"이제 한화 100년의 원대한 포부를 안고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입니다. 임직원 모두 그룹의 새로운 변화와 혁신의 대장정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승연 회장이 기업경영에서 보여준 과감한 개혁을 통한 성장과는 달리, 정작 김승연 회장 본인은 과거의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김 회장은 1993년 외화를 빼돌려 미국에 호화 주택을 구입한 혐의로 구속되면서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습니다.
또 2004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되던 중에는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지기 하루 전 전격적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며 '도피'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보복폭행 사건으로 김승연 회장이 구속된 지금 현재도 대한생명 인수과정에서의 로비의혹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터뷰 : 함영구 / 기자
-"6.25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화약을 만드는 특수회사로 탄생해 국민의 세금을 기반으로 성장한 한화그룹. 그룹 총수 김승연 회장의 구속으로 한화그룹이 사상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mbn뉴스 함영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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