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도시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IT의 중심지...‘인도의 실리콘밸리’
호수와 숲에서 찾은 안식
IT의 중심지...‘인도의 실리콘밸리’
호수와 숲에서 찾은 안식
남인도 여행의 시작은 벵갈루루에서 출발한다. 해발 920m 데칸고원에 위치한 인도의 IT 중심지이자 ‘인도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도시, 매년 인도인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 1위로 꼽히는 곳. 그러나 그 이면에는 급격한 인구 증가에 따른 문제점 또한 도사리고 있다. 인파에 놀라고 음식에 위로받으며 도시의 역사와 문화, 종교를 천천히 살펴본다.
벵갈루루 켐피고다 국제공항에 도착해 맞닥뜨린 예상치 못한 초현대적인 공항 건물의 이미지는 공항에서 도심으로 이동하는 길, 버스 차창 밖 풍경을 통해 빠르게 지워져갔다. 수많은 차량과 인파가 일으키는 엄청난 소음이 귀를 찢을 듯한 비명으로 다가왔고, 어디선가 ‘대도시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메시지가 귓가를 맴도는 환청까지 더해졌다. 이제 막 벵갈루루에 도착했는데 이곳을 당장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아무리 인도의 대도시라지만 도시의 혼잡함이 가히 압도적이다.
인도 정부가 조사하는 생활편의지수에서 인도인이 가장 살고 싶은 도시 1위로 꼽히는 벵갈루루는 인구수가 2001년 510만 명에서 2017년 1,233만 명으로 급증하며 매년 기록을 갈아치우는 상황이다. 벵갈루루가 인기 있는 도시로 꼽히는 배경에는 해발 920m의 서늘하고 쾌적한 고원지대에 위치한 지리적 장점과 더불어 최고의 IT기술산업 허브이자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한데 어우러진 도시라는 이유도 있다. 남인도 여행의 시작, 그러나 벵갈루루 인파에 적응할 수 있을까?
도로를 점령한 차량들과 도시의 중심부인 마하트마 간디 로드. 인파로 뒤섞인 도심의 거리는 경적 소리로 가득 찼다.
해방감을 선사해준 ‘도사(Dosa)’의 맛 차량의 경적소리가 일으키는 소란스러움이 모닝콜을 대신했다. 이제 막 동이 튼 것 같은 어둑어둑한 분위기와 달리 호텔 방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소음은 이미 한낮에 다다른 듯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그 에너지에 기가 빨려 다시 잠을 청할 기운을 빼앗겨버렸다. 생각지도 않게 새벽형 인간이 되어 벵갈루루에서의 둘째 날을 맞았다. 이른 아침, 출근하는 사람마냥 재빨리 외출 준비를 마치고 잃어버린 기운을 회복하러 식당으로 향했다. 아침 댓바람부터 인산인해를 이룬 식당, 음식을 주문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이곳 일상의 ‘소음’을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는다. 마음 먹는 대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남인도 최고의 음식인 ‘도사’
남인도 사람들은 아침식사로 도사(Dosa)를 먹는다. 도사는 남인도 최고의 음식이다. 더욱이 벵갈루루는 인도에서 ‘도사의 수도’라 불리며, 도사의 맛과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크레페나 펜케이크와 비슷한 도사는 검은 콩과 쌀을 발효시킨 반죽을 넓고 동그랗게 구워낸 것이 일반적이다. 도사에는 보통 렌틸콩이나 코코넛, 각종 향신료를 기반으로 한 야채 스튜인 챠트니와 삼바가 곁들여진다. 도사를 주문하면 구워진 반죽을 반으로 접거나 랩처럼 말아서 따뜻하게 제공되는데, 그 안에 감자나 채소볶음이 첨가되기도 한다.다소 상당한 양의 버터나 기름을 사용해 반죽을 구워내기 때문에 기름진 맛이 강한 편이다. 이때 같이 먹는 챠트니와 삼바가 느끼한 맛을 잠재우는 역할을 한다. 도사는 무조건 손으로 뜯어 스튜에 푹 찍어 먹어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카레감자가 곁들여져 나온 마살라 도사를 먹는 동안 마침내 소음과 인파로부터 해방감을 느꼈다. 이곳 벵갈루루에서는 소음만큼이나 음식의 힘도 막강한 저력을 뽐낸다.
이스크콘 템플로 가는 길
평화를 염원하는 사원과 교회
벵갈루루에서는 힌두교도가 78%에 달한다. 나머지 소수를 채우는 건 기독교와 무슬림이다. 인파에 적응하기로 마음 먹었으니 이곳의 대표적인 힌두교 사원을 지나칠 수 없지. 도심에서 북서쪽으로 약 10km가량 떨어진 곳에 ‘이스크콘 템플(ISKCON Temple)’이 자리한다. 스리 라다 크리슈나 찬드라 사원(Sri Radha Krishna Chandra Temple)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크리슈나 힌두사원 중 하나다. 1997년 5월 인도의 9대 대통령인 샹카르 다얄 샤르마(Shankar Dayal Sharma)에 의해 개관되었으며, 6개의 신사가 사원을 구성한다. 사원이 완공되기까지 총 7년이 걸린 데다 공사 현장에 투입된 인원만 6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일단 입구에 도착하면 신발을 벗고 맨발로 사원을 올라야 한다. 힌두교 경전에 언급된 디자인에 따라 전통적인 건축 스타일로 지어진 화려한 석조 건물은 성소로 가는 7개의 문을 포함해 내부가 마치 미로처럼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석조 조각이 화려하게 장식된 사원 꼭대기로 올라갈수록 단지의 광활함이 최고조에 달한다. 최고의 영적 존재인 크리슈나의 정신을 받들어 전 세계인의 평화를 기원하는 영원한 종교로서의 사원, 그 사명감이 존재 가치를 높이는 배경이다.
(좌로부터 시계방향)세계에서 가장 큰 크리슈나 힌두사원 중 하나인 이스크콘 템플을 맨발로 올랐다. 석조 조각이 화려하게 장식된 사원 맨 위층의 모습.
벵갈루루의 민족성과 종교를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세인트 메리 대성당(St. Mary’s Basilica)이다. 17세기 타밀 기독교 이주민에 의해 지어진 이곳은 벵갈루루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 하나다. 로마 가톨릭의 전통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현재의 화려한 건축물과는 달리 초기 이주민에 의해 성당이 지어질 당시만 해도 예배당은 초가집에 불과했다. 그도 그럴 것이 1648년 기독교가 인도 땅에 처음 들어왔을 무렵 벵갈루루는 작은 시골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제3차 영국과의 전쟁 이후 가톨릭 종교가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초가 지붕 형태의 예배당이 지어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규모가 점차 확대되어 현재에 이른다.대성당 외부를 구성하는 여러 개의 기둥이 위엄 있는 교회로서의 면모를 자랑한다. 이러한 대성당의 기둥과 높은 첨탑이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매년 9월 성 메리 축제 기간 동안 대성당에서는 각종 행사가 열리는데, 이때 대성당 주변은 벵갈루루뿐만 아니라 인도 전역에서 몰려든 수많은 기독교 신도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좌)벵갈루루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인 세인트 메리 대성당 (우)기도하는 인도 사람들의 모습
젊은 도시, 청년 문화가 살아 숨쉰다벵갈루루는 인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대도시 중 하나다. 그것도 인도에서 가장 생산적인 대도시로 대두되는데, 정보기술(IT)의 주요 중심지라는 이유에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술 허브로 평가받는 데다 ‘인도의 실리콘 밸리’라는 닉네임까지 통용된다. 카페나 공원 등지에서 홀로 혹은 삼삼오오 모여 노트북 작업을 하는 청년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들에게 직업을 물어보면 백이면 백 ‘IT’를 언급한다. IT산업 관련 직종에 근무하거나 대학에서 IT산업을 공부하거나 둘 중 하나다. 또한 벵갈루루에 거주하는 많은 수의 청년층의 경우 고등교육이나 대학진학 등을 이유로 타 지역에서 유학 온 이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벵갈루루의 대표적인 공원인 쿠본 파크(Cubbon Park)에 가면 많은 청년들이 자연을 벗삼아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공원 중앙에 위치한 공공 도서관은 청년들의 아지트와도 같은 장소다. 쿠본 파크는 빽빽하고 혼잡한 도로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숨통을 트이게 하는, 청년들 사이에 섞여 여행자가 아닌 도시의 거주자가 된 것 같은 여유를 선사해준다.
(위쪽 좌로부터 시계방향)울창한 나무 숲이 우거진 쿠본 파크의 모습. 도시의 역사가 얽혀 있는 벵갈루루 요새는 1537년 지어졌는데 그 일부만 대중에 개방되었다.
청년층의 인구 비율이 높은 벵갈루루에서 청년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장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처치 스트리트(Church Street)다. 도심의 메인 도로 역할을 하는 마하트마 간디 로드(Mahatma Gandhi Rd)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샛길이 처치 스트리트의 시작이다. 벵갈루루 중심 상업지구에 번화한 거리로서,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의 홍대 거리에 견줄 만하다.약 1km 길이로 뻗어 있는 처치 스트리트는 쇼핑몰과 음식점, 상점, 술집 등이 자리해 문화적 즐거움부터 나이트라이프에 이르기까지 역사와 문화, 현대성이 융합된 활기가 넘치는 장소다. 특히 벵갈루루에서 가장 트렌디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데 여느 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모던하고 깔끔한 건축물이 다소 눈에 띈다.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나 전자기기 등을 판매하는 쇼핑몰과 상점이 이 거리의 랜드마크다.
(좌)벵갈루루의 트렌디한 거리인 처치 스트리트 (우)과거 벵갈루루의 중앙 감옥이었던 프리덤 파크
우연한 발견, 도시의 역사와 자유
지금까지 경험한 인파는 선데이 바자(Sunday Bazar)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비좁은 거리 위에 너도나도 좌판을 깔고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까지 넘쳐나니 도저히 걷는 게 불가능할 정도다. 앞선 사람들을 따라 일렬로 줄지어 힘겹게 한 발짝 한 발짝 이동하다가는 해가 저물어도 시장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숨이 막힐 듯 답답하고 갑갑함이 지속되자 길 사이에 난 좁은 골목으로 몸을 피했다. 미로처럼 이리저리 얽혀 있는 길을 따라 30여 분 걸었을까.버스가 지나치는 대로변이 시야에 들어왔고 길을 건너 버스정류장에 닿은 뒤 그제서야 시장을 벗어난 기쁨을 느꼈다. 이내 주변에 카페를 찾아 나섰다가 우연치 않게 벵갈루루 요새를 발견했다. 그것도 방문객이 거의 없는, 너무나 한가로운 요새를 말이다.
1537년 진흙으로 지어진 벵갈루루 요새는 오늘날 도시의 역사가 얽혀 있는 장소로 대표된다. 제국의 흥망성쇠를 나타내는 많은 전투와 포위 공격의 장소였던 곳이다. 1761년 진흙 벽에서 돌 벽으로 바뀌면서 요새의 역할이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하게 되었고, 여기에 더 많은 보루와 탑이 추가되고 내부에 궁전이 지어지는 등 탄탄한 요새의 면모를 갖춰갔다. 다각형 모양으로 설계된 요새 건물은 북쪽과 남쪽을 연결하는 두 개의 주요 문이 자리하며, 입구에는 조각과 비문이 장식되어 있다.
(좌)자연의 쉼터, 울소어 호수 (우)자유투사의 정신을 기리는 자유의 벽
영국군이 요새를 점령했던 시기는 1791년의 일이다. 당시 영국군은 요새를 군사 기지와 감옥으로 활용했으며 궁전과 같은 인도 왕족과 군대가 사용했던 대부분의 시설과 구조물을 파괴했다.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요새는 국가 보호기념물로 지정되었고 오늘날까지 벵갈루루의 과거를 엿볼 수 있는 잘 보조된 기념물로 널리 활용된다.벵갈루루 요새의 우연한 발견이 프리덤 파크(Freedom Park) 방문으로 이어졌다. 현재 이곳은 일반적인 공원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감옥의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과거 벵갈루루의 중앙 감옥이었던 장소다. 1866년 영국은 인도 독립 전쟁 동안 증가하는 자유투사를 수용하기 위해 84제곱미터 땅에 감옥을 건설했다.
바큇살처럼 방사형 감방 블록으로 둘러싸인 중앙 감시탑과 사형수를 처형하는 교수대 등이 감옥의 주된 시설이었지만 2008년 대중에 개방되면서 죄수들이 머무르는 시설 일부만 남아 있다. 1975년 인도에서 비상사태가 선포되었을 당시 여러 저명한 정치 지도자가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으며, 민주주의 시위와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자유를 뜻하는 공원의 명칭처럼 벵갈루루 자유의 역사는 멈추지 않고 여전히 흐른다.
남인도 여행은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63호(25.01.14) 기사입니다]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