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중 절반이 책 한 권을 읽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지만,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은 관람객이 여행 가방(캐리어) 한 가득 책을 산 인증샷이 SNS상에서 화제가 되는 아이러니함이 공존한다. 이 같은 현상을 정의하는 ‘Z세대의 독서 이슈’와 함께, 올해 상반기 서점가를 휩쓴 베스트셀러 동향도 알아봤다.
책 읽지 않는 시대, 국제도서전은 흥행
올 초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3 국민 독서실태조사’에서 조금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지난 1년 동안(2022. 9. 1.~2023. 8. 31)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성인이 무려 57%나 된 것. 지난 1년간 종합 독서율은 성인 43%로,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6명은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0년간 종합 독서율 추이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종합독서량은 3.9권에 달했으며, 성인들은 독서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로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24.4%)라고 응답했고, 2위로는 ‘책 이외의 매체를 이용해서’(20.6%)가 뒤를 이었다.그런데 최근 이와 상반된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지난 6월 26일부터 30일까지 닷새간 열린 ‘2024 서울국제도서전’ 이야기다. 제66회를 맞이한 ‘2024 서울국제도서전’은 ‘미래의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을 모색하자는 의미의 ‘후이늠’(『걸리버 여행기』 속 완벽한 세상으로 묘사되는 세상)으로 주제를 선정, 총 19개국 452개(국내 330개사, 해외 122개사)의 참가사가 전시, 부대행사, 강연 및 세미나, 현장 이벤트 등 450여 개의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올해 도서전은 관람객 15만 명을 기록, 지난해 방문객(약 13만 명)보다 증가 추세를 보였다. 주말에는 입장 인원이 몰리며 대기 시간에만 1시간 정도가 소요됐다는 후기도 만나볼 수 있었다.
2024 서울국제도서전 풍경 (ⓒ허승주)
독서 인구의 감소, 출판계의 적자가 장기화되고 있다는 이슈 속에서 서울국제도서전에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는 소식은 다소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풍경이다. 이번 도서전과 관련된 언론 보도 중 다음의 기사가 화제가 되었다. ‘인스타용이라도 좋다···서울국제도서전 역대급 흥행(출처: 24. 7. 3. 국민일보 박은주 기자·최다희 인턴기자)’이라는 헤드라인의 기사에서는 이번 도서전의 흥행을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했다. 젊은 세대의 인증 욕구에서 온 ‘보여주기식 문화’라는 점과, 젊은 사람들 사이에 비슷한 고민과 정서를 지닌 사람들의 연결 욕구가 투영됐다는 점, 그리고 이런 도서전이 출판업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종합해보자면, 독서 인구가 줄어들며 출판시장 역시 쇠락해가고 있다고 보지만, 책,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텍스트(Text)와 관련된 사람들의 관심이 결코 적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허승주)
‘과시하면 어때?’ 독서도 Z세대에겐 ‘경험’이 된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듯하다. 태어나면서부터 인터넷과 전자 기기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 Z세대가 등장함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도서의 위기’는 매년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항간에는 ‘디지털 환경의 포화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단, 종이 책’에 대한 유행이 퍼져나가고 있는 현상상과, 애서가들 사이에선 ‘텍스트는 힙하다’는 표현을 주목하고 있다.지난 2월 영국 「가디언」지는 Z세대 사이에 종이 책 판매 붐이 일고 있다며, Z세대 모델이자 독서 클럽 사이트를 운영 중인 카이아 거버(Kaia Gerber)의 인터뷰 문장을 인용했다. “책은 항상 내 인생의 큰 사랑이었고, 독서는 정말 섹시하다Reading is so sexy.”(-참고 기사: ‘Reading is so sexy’: gen Z turns to physical books and libraries, 24. 2. 9. The Guardian, Chloe Mac Donnell)
국내에서도 지난 한 해 2030세대 사이에서 도서 『도둑맞은 집중력』이 화제성을 얻은 바 있다. 책은 집중력 감퇴의 원인 중에는 독서 시간의 감소를 꼽으며, 소설 읽기를 통해 집중력을 회복하고 몰입할 기회를 얻는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2024 서울국제도서전 포스터
한편으론 국내외 주요 매체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과시적 독서’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셀럽이나 인플루언서들을 위시한 Z세대들이 북 클럽에 가입을 하고, 도서 필사 노트의 인증샷을 찍으며, 서점의 팝업 공간을 찾는 경험 자체를 즐기는 것처럼, 종이책과 독서를 일종의 힙한 문화처럼 여기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최근 기성 세대 사이에서도 ‘과시적 독서’에 대한 표현이 결코 부정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 역시 주목해볼 부분이다. 도서전에서 산 책을 읽지 않고 쌓아둔다는 지탄 어린 글보다도, 이렇게라도 책을 접하는 기회, 읽을 기회를 얻는 것이 점차 중요해지는 시대라는 것. 이 역시 도서와 독서의 ‘자연스러운 순환’의 일부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2024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한 출판사가 판매 부스 앞에 붙여 놓은 사진이 화제가 됐다.
‘Q 안 읽는 책을 사놓는 사람을 부르는 말은? 오답: 지적허영, 정답: 출판계의 빛과 소금’(-다산북스) SNS에서 밈(meme)으로 화제가 된 문구를 활용한 사진 등을 활용한 도서 홍보 문구는 MZ세대에게 화제가 되었고, 도서전은 약 15만 명이 관객을 모으며 흥행리에 마무리됐다.
‘Q 안 읽는 책을 사놓는 사람을 부르는 말은? 오답: 지적허영, 정답: 출판계의 빛과 소금’(-다산북스) SNS에서 밈(meme)으로 화제가 된 문구를 활용한 사진 등을 활용한 도서 홍보 문구는 MZ세대에게 화제가 되었고, 도서전은 약 15만 명이 관객을 모으며 흥행리에 마무리됐다.
키워드로 보는 2024 상반기 베스트셀러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Keyword#1 ‘구간(舊刊)이 명관’교보문고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98년 출간 당시 베스트셀러로 사랑받은 『모순』(소설 1위)을 포함해, 소설 분야 30위 내에서 무려 11종이 출간한 지 10년이 되어가거나, 훌쩍 넘은 책들이 자리했다.
이는 지난해 『달러구트 꿈 백화점』, 『불편한 편의점』으로 신작 한국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거나, 『세이노의 가르침』 같이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주목을 받은 것과는 다른 풍경이다. 2015년 출간한 『구의 증명』(소설 3위)은 독자들의 입소문과 추천으로 판매 역주행을 하며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했고, 『인간실격』(소설 6위), 『데미안』(소설 12위), 『노르웨이의 숲』(소설 23위)과 같이 오랫동안 소설 분야 순위권을 기록하는 도서들이 자리하는 등, 출간한 지 오래된 도서(구간)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교보문고는 2024년 상반기 판매 동향으로 ‘구간이 명관’이라는 키워드를 선정했고, 예스24 역시 ‘소설, 시, 희곡 분야에서 고전의 강세가 돋보였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구간 소설들 중 영화, 드라마, 유튜브, OTT 오리지널 시리즈 원작 소설로 화제가 되면서, 갑자기 역주행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사례도 있다. 시간을 거슬러 인기를 얻는 책들이 등장하며, 교보문고는 하반기 도서 시장에 절판된 지 오래된 도서들의 재개정판 출간 활동이 늘 것으로 분석했다.
Keyword#2 ‘철학적 사고’
교보문고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상반기 도서 판매 트렌드 중에서도 인문 분야가 신장, 특히 서양철학 관련 도서의 신장률은 125.8%에 달했다. 철학 분야에서 판매 비중도 58.6%나 차지했다. 지난해 -32.1% 하락세를 보였던 동양철학 관련 도서의 신장률은 상반기 16.4% 상승했다.
그중에서도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올해 시작부터 베스트셀러 1위 및 상위권을 유지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이후에도 ‘쇼펜하우어’ 키워드를 단 제목의 책들은 지난해 8종, 올해 상반기에만 13종이 출간되었고, 일부는 상위권에 오르는 등 책 속에 담긴 쇼펜하우어 인생철학을 추구하고자 하는 독자들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다른 서양철학자들의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쇼펜하우어뿐만 아니라 니체, 마키아벨리, 플라톤, 칸트 순으로 상반기에 판매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양철학자 관련 도서 중에서는 『강신주의 장자수업』, 『오십에 읽는 장자』 등 장자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졌다.
Keyword#3 ‘핵인싸의 추천 도서’
도서『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가 2024년 상반기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했다. 해당 도서는 이동진 평론가의 추천 도서라는 점도 주목해볼 부분이다. 이동진 평론가는 오랫동안 도서 팟캐스트를 진행, 교양 예능프로그램을 통해서 다양한 도서를 추천해오며 애독가 팬덤을 형성해왔다. 그가 지난해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2023 올해의 책’으로 이 책을 꼽았는데, 연말에 감성과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에세이로 입소문을 타며 추천 이후 점점 더 인기를 얻었다.
이 밖에도 스타나, 인플루언서들이 선택한 도서들에 관심을 보이는 추세가 커지고 있다. 특히 Z세대 독자들은 최애 아이돌의 도서 리스트에 주목했는데, 팬 소통 플랫폼을 통해 방탄소년단 RM은 『언어의 무게』를, NCT 드림의 재민은 『자존감 수업』을 추천한 바 있다. 또 평소 다독가 아이돌로 유명한 르세라핌의 멤버 허윤진이 출국 길 공항에 책을 들고 오는 모습 등이 공개되며, ‘공항 책’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다(허윤진의 책 리스트에는 『Breasts and Eggs』(한국어판 『젖과 알』), 『올 어바웃 러브All about Love』, 『세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등이 있다).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Keyword#4 ‘갓생 위한 자기계발’경기침체와 고물가가 이어지며 현실을 반영하듯 자기계발, 외국어, 수험서 분야가 ‘갓생’의 열기를 이어갔다. 예스24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점가에 혜성처럼 등장한 『세이노의 가르침』이 예스24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 1위 및 자기계발 분야 1위를 차지했다. 이 밖에도 부와 성공, 동기부여 관련 도서가 꾸준히 관심을 얻으며 종합 100위권 내 자기계발서 10권이 포진했다. 올 상반기 자기계발 관련 도서 신간으로는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나는 나의 스무 살을 가장 존중한다』 등이 주목받았고, 그 외 기존 베스트셀러 『퓨처 셀프』, 『역행자 확장판』, 스테디셀러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무삭제 완역본)』, 『원씽』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Keyword#5 ‘웰에이징과 노년의 삶‘
초고령화 시대를 앞두고 ‘노화’, ‘나이듦’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젊은층 사이에 ‘저속노화식단’, ‘감속노화법’ 등이 트렌드가 된 것처럼, 건강한 나이듦을 뜻하는 ‘웰에이징Well-aging’, 노년의 삶, 죽음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룬 도서가 관심을 받고 있다. 예스24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노화, 나이듦’ 관련서는 2023년 64종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만 31종이 출간됐다. 판매량 역시 올 상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68.7% 증가했다. 노년내과 전문의 정희원 교수의 『느리게 나이드는 습관』과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가 관련 도서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올랐다. 더불어 나이듦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조명하는 『오십, 나는 재미있게 살기도 했다』 등도 사랑받았다. 특히 기대 수명이 늘어나며 4050대가 새로운 시작,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재조명되면서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같이 ‘마흔’, ‘오십’ 등을 키워드로 한 인문서, 시, 에세이 관련 도서들이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참고 자료: ‘교보문고 2024 상반기 결산’, ‘예스24 2024년 상반기 베스트셀러 트렌드 및 도서 판매 동향’, ‘알라딘 2024년 상반기 베스트셀러 총결산’
2024 상반기엔 어떤 도서들이 인기였을까?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서점 3사의 2024 상반기 베스트셀러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강용수 저 / 유노북스 펴냄)‘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서점 3사의 2024 상반기 베스트셀러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강용수 저 / 유노북스 펴냄)
쇼펜하우어는 40대를 인생의 분기점’이라고 말한다. 여러 위기들 가운데 ‘마음의 위기를 다스리는 철학 수업’이 공감을 얻은 것처럼, 그의 통찰이 현대인의 질문의 답이 되어준다.▷『세이노의 가르침』 (세이노 저 / 데이원 펴냄)
세이노의 가르침 (세이노 저 / 데이원 펴냄)
지난해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며 스테디셀러 반열에 오른 세이노의 가르침. ‘당신이 믿고 있는 것들에 No!를 외치고 제대로 살아가라’는 뜻을 담은 필명 ‘세이노(Say No)’처럼, 저자가 20여 년간 쌓아온 부와 성공에 대한 지혜를 아낌없이 들려준다.▷『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리 저 / 김희정·조현주 역 /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리 저 / 김희정·조현주 역 /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친형의 죽음 이후 뉴욕의 미술관에서 경비원으로 10년간 근무하게 된 저자 패트릭 브링리의 자전적 에세이다. 7만 평의 공간, 300만 점의 작품, 연 700만 명의 관람객들 사이에서 발견한 저자의 다시 일어설 용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아마존 40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미국, 영국 유수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글 시티라이프부 이승연 기자(lee.seungyeon@mk.co.kr)]
[사진 및 자료 제공 문화체육관광부, 서울국제도서전,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각 출판사 /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39호(24.7.2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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