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서울 디렉터 "2년 연속 프리즈서울 개최, K팝과 K영화의 영향 없지 않아"
한국 미술 시장, 전 세계서 7위 차지...'빠른 성장' 주목 받아
해외 경매사 "홍콩 등 세계 허브 이용할 것...현재로서는 서울 경매 계획 없어"
이달 초 프리즈서울과 키아프 서울이 열리면서 한국이 세계 미술 시장의 중심으로 주목받았습니다. 아트바젤과 함께 명실상부 세계 양대 아트페어로 손꼽히는 프리즈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서울을 찾아 미술계의 기대감이 고조되는 모습이었습니다.한국 미술 시장, 전 세계서 7위 차지...'빠른 성장' 주목 받아
해외 경매사 "홍콩 등 세계 허브 이용할 것...현재로서는 서울 경매 계획 없어"
이 기간에 맞춰 서울을 방문하는 세계 미술 시장의 큰 손을 사로잡기 위해 세계적인 경매사와 세계 화랑들이 작품 전시에 힘을 쏟았는데요. 그렇다면 세계 미술 시장에서 지금의 한국 미술 시장이 차지하는 위치는 어느 정도이고 어떻게 인식되고 있을까요?
해외 소재의 아트페어, 화랑, 그리고 경매사 측을 취재한 내용을 종합합니다.
프리즈서울 "한국,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시기"
프리즈서울 디렉터인 패트릭 리는 아시아 미술 시장에서 홍콩뿐 아니라 서울을 프리즈 개최지로 선택한 이유를 질문한 MBN 취재에 "한국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시기인 만큼 서울에서도 아트페어를 열 만 하다고 생각했다"고 답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의 영화들이 선전하고 있고, K팝을 봐도 한국이 세계 문화의 중심지가 되지 않았느냐"며 "한국의 화랑들도 잘하고 있었고, 우리가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했는데 한국이 문화예술의 나라라는 판단이 섰고 잘한 결정 같다"고 말했습니다.
미술 시장의 규모만을 봤다기보다는 '흥행의 요소'까지 따져 서울을 골랐다는 것입니다.
"6년 전만 해도 '한국은 안 된다'고 했다...가장 빠르게 진보한 시장"
화랑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세계 4대 화랑 중 하나인 페이스 갤러리(Pace Gallery)의 CEO 마크 글림셔도 "지금은 K-문화가 전 세계를 주도하고 있고 잘 되었다"라면서도 "6년 전에는 서울 지점을 내려고 할 때 직원들이 '한국은 안 된다'고 했다"고 회고했습니다.
페이스갤러리 CEO 마크 글림셔 [사진=MBN]
기자간담회에서 글림셔는 "6년 전만 해도 우리가 이미 설립한 7개 갤러리들 외에 더 짓는 것은 안 된다고 직원들이 반대했는데 돌이켜보면 가장 중대한 결정을 내렸던 것 같다"며 "한국은 현재 가장 빠르게 움직이고 진보하는 시장이고, 런던 지점에 미안하지만 페이스갤러리 그룹에서는 런던이 3위로 밀려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올해 30주년을 맞는 영국의 유명 화랑 화이트큐브(White Cube)도 한국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았습니다. 화이트큐브는 올해 처음으로 서울에 지점을 엽니다.
웬디 쉬 화이트큐브 아시아 총괄 책임 매니저는 MBN에 "본격적으로는 5년 전부터 5명의 팀원들이 한국을 오가며 진출 준비를 시작했다"며 "한국의 미술 시장이 성숙하고 정교해졌다고 생각하고 한국의 수집가들도 현대 미술을 잘 알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화이트큐브 아시아 총괄 책임 매니저 웬디 쉬 [사진=MBN]
지난해 한국 전체 미술시장이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는 매출을 기록할 만큼 활황을 보인 것은 화이트큐브의 서울 거점 마련 결심에 마지막 확신을 심어준 요소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시장의 전체 파이를 살펴보면 한국은 작은 시장입니다. 아트 바젤·UBS의 '2023년 미술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전 세계 매출의 45%, 영국이 18%, 중국이 17%를 차지한 반면, 한국은 1%의 매출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트 바젤·UBS의 '2023년 미술 시장 보고서' 전 세계 미술 시장 점유율 [사진=보고서 캡쳐]
한국이 세계 미술 시장에서 스페인, 일본과 함께 세계 7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 것입니다. 세계 화랑이 여전히 아시아 시장에서는 중국과 가까운 홍콩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고, 아시아 총괄 직책을 맡은 직원들 다수가 홍콩에서 일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세계 최대 갤러리 중 하나인 스위스 갤러리 하우저앤워스(Hauser&Wirth)의 아시아 총괄 홍보 디렉터 타라 리앙은 프리즈 개최를 앞두고 올해 처음으로 한국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서울 지점 오픈 계획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답했습니다.
하우저앤워스 아시아 총괄 홍보 디렉터 타라 리앙 [사진=MBN]
이어 "지난해 프리즈 서울에선 하우저앤워스를 처음 소개하는 데에 집중했다면 올해는 갤러리의 실험성과 퀄리티를 적극적으로 보여줄 것"이라며, 서울 진출 가능성을 닫지 않으면서도 더 이상의 말은 아꼈고 홍콩과 전 세계 지점에서 여는 전시 소개에 힘썼습니다.
코로나 이후에도 회복력 보인 미술 시장...배경은?
한국에 관심을 가진 세계 미술 시장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떨까요?
지난해까지 세계 미술 시장은 견고한 회복세를 나타냈습니다. 아트 바젤·UBS의 '2023년 미술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미술 시장의 매출액은 코로나19가 발발한 2020년 503억 달러를 기록했지만, 2021년 659억 달러, 2022년 678억 달러를 기록합니다.
아트 바젤·UBS의 '2023년 미술 시장 보고서' 전 세계 미술 시장 매출액 추이 [사진=보고서 캡쳐]
금융위기로 미술 시장도 침체기를 겪었던 지난 2009년의 395억 달러의 매출액보다 훨씬 큰 규모이고 성장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전 세계 억만장자의 숫자의 증가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세계 억만장자의 숫자는 10여년 전보다 무려 2배가 늘어났습니다. 포브스의 기록을 인용하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억만장자의 숫자는 2,487명이며 이들의 재산 합계는 1경 1,674조 달러입니다.
아트 바젤·UBS의 '2023년 미술 시장 보고서' 전 세계 억만장자 숫자 [사진=보고서 캡쳐]
이러한 추세는 미술시장의 양분화를 낳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경매사와 딜러, 그리고 사적 시장에서의 전 세계 미술품 판매액이 견고할 뿐, 경제적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 공공 경매사와 공공 시장의 매출은 크게 떨어진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해외 경매사들 "한국, 미술품 운송 등 인프라 갖췄고 '장기적 가능성' 보여"
한국도 이런 흐름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아트 바젤·UBS의 같은 보고서에서 한국의 '고급' 딜러 수가 지난해 프리즈 서울의 첫 개최를 전후로 40%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딜러 수로 볼 때 각각 11%와 28% 증가한 중국과 일본보다 큰 성장을 보인 것입니다.
양분화된 시장 분위기 속에 해외 유명 경매사는 큰 매출 호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한국 시장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습니다.
수년 전 서울 사무소를 구축한 크리스티와 필립스와 달리, 올해 서울 사무소를 꾸리기로 하고 신고식을 치른 소더비는 특히 지난해 프리즈 서울이 한국을 흥미롭게 만들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닉 버클리 우드 소더비 디렉터는 한국 미술 시장에 대해 "서울에는 훌륭한 갤러리와 미술관도 많고 작가 수도 많다"면서도 "프리즈가 서울에 진출하면서 미술 환경이 바뀌고 한국이 흥미롭고 이목을 집중시키는 미술시장으로 거듭났다고 본다"고 답했습니다.
소더비 세일즈 디렉터 닉 버클리 우드 [사진=MBN]
또 닉 버클리 우드는 "한국은 최근 수년 동안 폭발적인 성장을 한 것 같다"면서 "한국의 모든 사람들이 미술에 빠져있고, 한국은 직관적으로도 강한 상업적인 미술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MBN은 일찍이 서울 사무소를 두고 활동 중인 크리스티와 필립스를 향해서는 한국의 미술시장에 대한 평가뿐 아니라 홍콩경매와 같이 서울에서 직접 경매를 할 계획은 없는지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질문했습니다.
기자와 만난 프란시스 벨린 크리스티 아태지역 총괄 대표는 "한국의 미술시장은 수십년 동안 강했고 한국에 늘 놀라움을 느낀다"며 "2019년 크리스티에서 한국 거장 김환기의 '우주'가 132억원 이라는 한국 미술품 최고가 신기록을 세웠고, 3월에는 18세기 조선 달항아리가 60억원에 낙찰된 만큼 한국의 장기적인 가능성을 본다"고 말했습니다.
크리스티 아태지역 총괄 대표 프란시스 벨린 [사진=MBN]
이어 "한국에 13년째 있는데 아트 시장과 콜렉터들의 발전을 보고 있다"며 "특히 올해 상반기 한국의 젊은 밀레니얼 세대의 미술품 구입자 숫자가 두 배로 늘어난 것을 보았고 한국은 회복 탄력성이 높은 튼튼한 시장이고 수요도 꾸준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에서의 경매 진행 가능성에 대해서는 "뉴욕, 런던, 홍콩이 세계의 중심이자 허브이지 않느냐"며 "한국처럼 싱가포르, 필리핀, 대만 등 지역 옥션사가 있는 나라들이 많은데, 크리스티가 더 저명한 곳에서 한국의 작품들을 소개한다고 생각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조나단 크로켓 필립스옥션 아시아 회장은 기자를 만나 "한국은 세계 미술품 수집 커뮤니티에서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미술품 관리, 보안, 운송 등과 관련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세금 문제나 미술품 반입 문제에 있어서도 자유롭다"고 높게 평가했습니다.
필립스옥션 아시아 회장 조나단 크로켓 [사진=MBN]
이어 "한국은 1970년대부터 세계 블루칩 작가들에게 투자하는 선구자들이 있는 자리 잡은 시장이었고, 지금도 한국의 아티스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떠오르는 아티스트들에게 관심을 갖고 빛을 비추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시장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고 밝혔습니다.
그렇지만 홍콩과 비교했을 때는 "두 번째로 큰 시장인 중국과 홍콩, 그리고 대만이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홍콩 중국과 가까이 있고 대량의 예술품 거래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며 "서울은 동북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이라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 작품 수집에 있어 아시아 지역에 2~3개의 중심지가 있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홍콩과 서울은 확실히 그 안에 든다"고 평가했습니다.
한편, 필립스의 서울에서의 경매 진행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필립스옥션 뉴욕의 한 관계자는 "절대 '아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시계를 말할 때는 '스위스산'을 말하듯이 일반적으로 해왔듯이 뉴욕과, 홍콩, 런던에서 경매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이어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울옥션, K옥션과 같은 강한 옥션사를 이기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경매를 진행하려면 생중계 온라인 스트리밍도 있지만 많은 인프라가 필요하기 때문에 다 갖춰진 곳에서 하려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젊은 아티스트를 알리기 위한 자선 경매를 하는 경우에는 한국에서 진행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 김문영 기자 kim.moonyoung@mbn.co.kr ]
영상취재 : 이권열 기자, 신성호 VJ, 전현준 V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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