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 핫 100 1위에 밀양박씨가 올랐다."
"밀양박씨 최고의 아웃풋(인물)!"
미국 빌보드 4월 둘째주 핫100 차트 1위는 '리브 더 도어 오픈(Leave the door open)'이 차지했다. 마이클 잭슨 이후 최고의 팝 아티스트라는 브루노 마스와 앤더슨 팩이 결성한 밴드 '실크소닉'의 작품이다. 미국 팝에 정통한 네티즌들 사이에선 "드디어 밀양박씨가 빌보드까지 접수했다"며 우스갯 소리를 쏟아냈다. 푸에르토리코계 아티스트인 브루노 마스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앤더슨 팩이 밀양박씨와 무슨 관계인 걸까.
답은 앤더슨 팩의 가정사에 있다. 그의 어머니는 6·25 전쟁 당시 혼혈 고아였다. 아프리카계 미군과 한국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나 고아원에 버려졌다. 미국 로스엔젤레스 한 가정에 입양된 뒤, 아프리카계 미국 남성과 결혼해 앤더슨 팩과 여동생을 낳았다. 앤더슨 팩에겐 25%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셈이다.
이름이 앤더슨 팩(PAAK)이 된 이유도 애달프다. 어머니가 미국에 입양될 당시 박씨의 영어 스펠링 'PARK'가 'PAAK'으로 표기됐다. 행정상 오류였지만, 앤더슨 팩은 이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았다. 가정 폭력이 심했던 아버지가 집을 떠나고, 어머니 밑에서 홀로 자란 영향도 컸다.
앤더슨 팩과 브루노 마스가 결성한 슈퍼 밴드 `실크소닉`. [사진 제공 = 워너뮤직]
앤더슨 팩은 한국과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음악공부를 위해 도미한 한국인 유학생 제이린과 부부의 연을 맺었다. 2015년에는 한국 R&B 가수 딘의 '풋 마이 핸즈 온 유' 피쳐링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번 핫 100 1위에 오른 '리브 더 도어 오픈' 뮤직비디오를 본 네티즌은 "앤더슨 팩에게서 우리 할아버지의 얼굴이 보인다"며 친근감을 표시한다.미국 팝 음악 시장에서 앤더슨 팩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2018년 5월 발표한 싱글 '버블린'(Bubblin)으로 2019년 제61회 그래미상 '최우수 랩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했다. '버블린'은 그가 직접 작곡하고 노래한 곡이다. 고향인 캘리포니아 항구 도시 벤투라를 배경으로 한 동명 앨범으로 올해 그래미 '최우수 R&B 앨범'도 거머 쥐었다.
이번 핫100 차트 1위 '리브 더 도어 오픈'이 남긴 의미가 작지 않다. 빠른 템포 디스코나 전자음이 가득한 음악이 차트 상위권을 독식하는 현 흐름과 반대되기 때문이다. 멤버들끼리 노래를 주고 받고, 그 사이를 드럼·기타·피아노 악기 소리가 흐른다. 전형적인 아날로그 감성이다. 여성을 유혹하는 듯한 느끼한 가사와 그에 걸맞는 유혹의 제스처도 발군이다. 1970년대 감성을 그대로 재현했다는 평가다. 브루노 마스에겐 통산 8번째 핫 100 1위, 앤더슨 팩에겐 첫 번째였다. 바야흐로 '밀양 팩씨' 전성시대다.
[강영운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