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세를 다 하늘에 뿌리고 다녔죠. 작년에만 20일간 시베리아 대륙 횡단을 했고, 아르메니아와 조지아를 비롯한 코카서스 일주를 했어요. 아, 이집트와 그리스도 다녀왔군요. 숱하게 발로 뛰어다닌 결과가 올해 나온 '러시아' 편이지요."
역사만화의 대명사 '먼나라 이웃나라'의 저자 이원복 교수(74)는 지난 28일 강남 선릉 작업실에서 기자를 만나자마자 지구본을 손바닥으로 돌리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200만마일 쌓을 정도로 지구를 몇바퀴 돌며 보낸 칠십 평생이다.
코로나19로 잠시 여행 인생에 쉼표를 찍은 사이, 그의 작품이 뮤지컬로 공연된다.
만화책을 뚫고 나온 것 같은 빵떡모자 아저씨가 엉뚱 발랄한 소녀 독자를 만나 역사 배틀을 겨루는 이야기다.수많은 나라 중 가장 먼저 선택받은 국가는 영국이다. 이 음악여행을 기획한 이강 이강플레이 대표(41)는 "처음엔 음악이 풍부한 독일이나 이탈리아를 먼저 하려고 했지만 아이들이 가장 가고 싶은 나라를 조사했더니 의외로 영국이였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2014년 출판사 김영사를 찾아가 저작권 협의를 했다. 애니메이션 등 다른 제안을 거절했던 이원복 교수는 "역사에 라이브 음악을 곁들인다는 생각이 좋았다"며 흔쾌히 승낙했다. 처음엔 클래식 콘서트 형식이었는데 2016년부터 음악과 춤을 가미해 뮤지컬로 만들어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
"잉글랜드 초기 민요부터 헨델, 엘가 클래식에 이어 비틀즈, 앤드류 로이드 웨버까지 다루고 있어요. 아일랜드에서 전래된 경쾌한 탭댄스도 흥을 달구죠. 아이들이 공연을 보고 세상을 넓게 봤으면 좋겠어요."
이 대표는 "앞으로 프랑스편, 독일편 등 만화처럼 시리즈를 만들어 가고 싶다. 스테디셀러 가족 공연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원래는 지난 5월 공연을 기획했으나 코로나 확산으로 연기돼 이달 서울 무대에 올린다. 오는 5일 강동아트센터에 이어 11일 압구정 광림아트센터 장천홀에서 오후 5시, 7시30분 두차례 열린다.
베스트셀러 '먼나라 이웃나라'는 1987년 단행본이 나온 뒤 30여년 간 1500만부 넘게 팔렸다. 지난 2018년 덕성여대 총장을 은퇴한 이원복은 이제 만화가로 '영원한 현역'의 삶을 살고 있다. 작업실 책상엔 연필과 펜이 빼곡한 컵통이 보였다. 문하생을 두지 않고 수작업으로 그려 스캔을 뜬 뒤 컴퓨터 작업을 입힌다.
그가 만화의 위력을 실감한 것은 1970년대 독일 유학 때였다.
"프랑스 대표 만화인 아스트릭스는 독일 불문과 교재로 씁니다. 10년간 유학하고 한국에 돌아와 보니 어린이날마다 만화를 모아서 불을 지르더군요."
만화를 천시하던 문화에 기겁했던 그는 지금 한국 웹툰이 세계 1등으로 뻗어나가는게 흐뭇하기만 하다.
"몇년 전부터 유럽에 가면 사람들이 '망가'(일본 만화)라고 안하고 만화라고 합디다. 그만큼 위상이 달라진거죠."
한국 웹툰 미래도 밝다. "한국인 만화책이 두껍고 스토리가 강하죠. 유럽 만화는 34페이지 한권으로 끝나요. 일본 만화는 아직도 아날로그예요. 일본 주간 잡지 중심으로 연재 문화가 강해서 디지털에서 뒤처집니다."
아울러 한국 웹툰이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배경으로 한국인들의 독특한 멘탈이 작용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한국은 백인들의 식민 지배를 받지 않았어요. 서양 문화에 대한 적개심이 없지요. 대신 항일 운동을 하면서 민족적 아이덴터티를 키웠습니다. 백인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우리 식으로 해석하지요. 우리 것을 서양화하는데도, 또 서양 것을 우리 것으로 만드는데도 능숙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스스로 서양화된 거라 다릅니다. 뼛속 깊이 서양 컴플렉스가 있지요."
세계 대중문화계를 이끄는 BTS가 탄생한 게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가 이름 붙인 '글로벌믹스형 아이덴터티'는 한국인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DNA다.
"만화 '신의물방울'을 보면 일본이들이 얼마나 백인 컴플렉스로 점철돼 있는지 알지요."
그래서 그는 직접 와인 만화인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을 집필하기도 했다.
3년 전 여행한 것을 토대로 내년엔 인도편을 출간한다.
"인도편을 준비하다 보니까, 깨닫는게 있어요. 사람의 의식 세계는 세 가지로 갈라져요. 유일신의 세계, 무신의 세계, 합일신의 세계죠. 신과 내가 하나가 되는 세계가 인도의 세계관이더군요. 힌두교에는 신이 너무 많아서 사람들이 옵션으로 고를 수 있어요. 하하."
[이향휘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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