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듬 시인 시집 ‘히스테리아’가 세계적 권위의 전미번역상을 탔다. 한국인 중 최초 수상이다. 지난해 김혜순 시인 시집 ‘죽음의 자서전’이 캐나다 그리핀시문학상을 받은 데 이어 또 한 번의 쾌거다. 김 시인은 16일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수상 소식을 듣고 믿기지 않아 뺨을 꼬집어보기도 했다”며 “컨퍼런스에서 시가 낭독되는 걸 보면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소감을 전했다.
미국 문학번역가협회(ALTA)는 15일(현지시간) ALTA 온라인 컨퍼런스를 열어 전미번역상 시 부문 수상작에 김 시인 시집 히스테리아를 선정했다. ALTA는 히스테리아에 대해 “혼잡한 도시에서의 일상적 경험들을 도발적인 언어로 그려냈다”며 “합리성과 서정성, 사회 규범에 저항하며 한국 페미니즘 시학을 계승한다”고 평했다.
같은날 ALTA는 번역상 산문 부문 수상작,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 수상작도 발표했다. 히스테리아는 전미번역상 시 부분과 더불어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에서도 수상했다. ALTA가 문학상을 시상한 이래 한 해에 같은 작품이 2개 이상의 상을 받은 건 최초다. 이로써 한국 시인들 작품이 2년째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을 가져갔다. 지난해에는 시인 김혜순이 쓰고, 시인 최돈미가 번역한 ‘죽음의 자서전’이 수상했다.
전미번역상은 ALTA가 1998년 만든 상으로 시 분야와 산문 분야 등에서 시상한다. 번역문학 작품에 수여되는 다른 상과 달리 원작과 번역본의 등가성까지 평가하는 등 기준이 까다롭다. 2010년 제정된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은 우수 아시아 번역 문학에 시상한다. 둘 다 작품과 그 번역자에게 주는 상이다. 히스테리아는 제이크 레빈·서소은·최혜지가 공동 번역했다. 김 시인은 “사과를 먹는 사과(apple)와 하는 사과(apology) 둘 다로 쓰는 등 번역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는데 세 분 번역가들이 리듬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언어의 뉘앙스를 잘 살려주셨다”고 공을 돌렸다.
김 시인은 2001년 ‘포에지’로 등단해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과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를 발간했다. 히스테리아는 2014년 출간된 그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이 중 ‘명랑하라 팜 파탈’과 ‘블러드 시스터즈’는 히스테리아와 더불어 번역 출간된 바 있다. 김 시인은 그간 시를 통해 여성, 미혼모, 장애인, 동성애자, 정신질환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울분을 대변해왔다는 평을 받는다.
이번 수상작 ‘히스테리아’도 마찬가지다. 시집과 제목이 같은 시 히스테리아는 지하철 안에서 벌어지는 성추행에 대해 다뤘다. 불쾌한 경험에 대해 화를 내고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한다. 또다른 시 ‘사과 없어요’에서는 감정노동자 등 약자들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시적 화자는 주문한 음식이 잘못 나왔지만 종업원이 피해를 받을 것을 염려해 항의하지 않고 그대로 먹는다. 김 시인은 “저도 변방 출신이고 기득권이 없는 존재”라며 “소수자들에 연대감을 가지고 이들의 정서를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과감하고 충격적인 필치 탓에 그는 대중적으로 환대받지는 못했다. 2014년 ‘웹진시인광장 올해의 좋은 시 상’을 수상한 시 ‘시골 창녀’ 정도가 알려져 있다. 김 시인은 “그간 ‘왜 이런 시를 쓰냐’는 등 안 좋은 말들도 들어왔다”며 “‘계속 시를 써도 괜찮다. 힘을 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받게 돼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고 술회했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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