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현지시간) 저녁께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이례적인 공연이 열렸다. 다자외교 중심지인 이곳에 '독도'를 테마로 한 음악이 은은히 울려퍼진 것. 주인공은 클래식 기타리스트 전장수 씨(44)였다. 45도로 기울인 기타에 양손을 얹어 어루만지듯 타현하자 좌중은 일제히 숨 죽였다. 그렇게 '독도의 사계' 가을 악장이 연주됐다.
지난 7일 전화 인터뷰로 만난 전 씨는 "인권 단체인 자유민주연구원의 요청에 응한 것"이라며 "그날(24일)이 마침 '유엔의 날'이자 한국 시간으로 '독도의 날'(25일)이어서 감회가 더 남달랐다"고 했다. "사흘 전 뉴욕 카네기홀에서 '독도의 사계' 전곡을 연주했어요. 이걸 듣고선 유엔에서도 연주해달라더군요. 북한 인권 관련 비정부기구(NGO)들이 주최한 리셉션이 열린다면서요."
전 씨가 창작한 '독도의 사계'는 독도의 자연미와 사계절 경관에 대한 느낌이 오롯이 배어 있다. 봄·여름·가을·겨울 각 3악장씩 총 12개 악장으로 짜여졌는데, 계절마다 우리 선조에 대한 헌정적 의미가 깃들었다. 전 씨는 "2009년 여름을 시작으로 네 차례 독도를 방문했다"며 "독도와 연관된 우리 조상들 얘기를 계절마다 녹여 잊혀진 역사를 상기시키고 싶었다"고 했다.
"봄 편에는 조선 후기 어부이자 민간 외교가 안용복 선생의 얘기를 녹였어요. 독도에서 불법 어업을 일삼는 외인들을 쫓아내고 혼자 일본에 건너가 항의하신 의인이시죠. 여름 편엔 1953년 독도 역사의 산증인인 홍순칠 대장과 그분이 조직한 독도의용수비대를 되새겼고, 가을·겨울 편엔 일제강점기 윤봉길·안중근 의사를 기린다는 의미를 담았아냈어요."
클래식 기타리스트인 그가 이토록 독도에 천착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단재 신채호 선생이 남긴 경구를 끄집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것. 그는 "홀로코스트의 희생양이었던 유태인들도 '용서는 하돼 잊지는 말자'며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며 "반면 우리는 우리 영토를 너무 망각하고 사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현재 일본은 동해 전역을 일본해로 바꿔 놨어요. 최근 들은 바로는 시네마현 버스마다 다케시마는 우리 땅이며 한국이 불법 점유 중이라는 광고물까지 붙였다고 해요. 어디 이 뿐일까요. 지난 2월 동계 올림픽 직전에 일본 정부가 다케시마 전시관을 만들었죠. 우리가 잊고 살기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거예요. 안타까운 일이죠."
전 씨는 한예종 음악원 출신이다. 이후 한국인 최초로 예일대 음악대학원에 진학해 기타를 전공했다. 당시 월스트리트의 한 거부가 음악대학원에 1억불을 기증했고, 그 덕에 전액 장학금까지 받았다. "당시가 2008년이었죠. 정말 운이 좋았다고 밖에요. 그게 없었다면 연 4000~5000만원 등록금을 감당 못 했을 테니까요."
클래식 기타와의 연은 중학교 무렵 닿았다. 세계적 기타리스트 나르시소 예페스의 한국 고별 무대를 본 게 계기였다. 무대를 마치고 퇴장하는 그의 뒷모습이 소년의 뇌리 속 인장으로 새겨졌다. 그는 "이 길이 내 길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그 순간 내 삶의 노정은 이미 정해졌다"고 돌이켰다.
그러고 세월이 흘러 그는 꿈 하나를 이룬다. 지난 2009년 뉴욕 카네기홀에서 클래식 기타 독주회를 처음 가진 것. 한국의 기타리스트가 카네기홀 독주회를 가진 건 이때가 최초였다. 그는 "바흐의 샤콘느와 더불어 '독도의 사계' 중 '여름'을 연주했다. 9년이 지나 전곡까지 연주했으니 나는 참 복 많은 사람"이라며 웃었다.
아마도 오는 11일 오후 5시께 그의 숙원 하나가 더 이뤄지는 셈인지도 모른다.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독도의 사계' 오케스트라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그가 직접 지휘에 나서는 것으로, 오케스트라 버전은 세계 초연이다. 경상북도와 독도재단 후원을 받아 2000여석 전체가 무료다.
그는 "음악 뿐 아니라 그림과 시, 영상 전시가 한데 어우러진 복합 행사"라며 "우리에게 갖는 독도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길 바란다"고 했다. 본 공연은 한다우리로 연락하면 무료 초대권을 제공한다. 예술의전당 홈페이지에서도 예약이 가능하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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