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워드 K팝 / ③ 빅히트엔터테인먼트 ◆
한국 대형 연예기획사는 문어발식 사업을 하는 대기업처럼 움직여왔다. A·B·C팀 등 다양한 그룹을 보유하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카드를 하나씩 꺼내가며 트렌드 변화에 속도감 있게 대응했다. A팀이 침체기에 빠지면 B팀과 C팀에서 나온 매출로 이를 만회하는 포트폴리오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보이그룹 방탄소년단(BTS)만으로 한국 연예기획사 역사상 가장 큰 성공을 맛보며 엔터테인먼트 회사 운영 방식을 새롭게 정립했다. 상장 후 시가총액은 최대 2조5000억원으로 예상되고,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은 기존 3대 대형 기획사를 크게 앞질렀다. 매일경제는 방탄소년단을 데뷔시킨 후 5년 만에 한국 연예기획사의 경전으로 만든 빅히트를 '바이블(Bible·성경 또는 종교의 경전)'이라는 키워드로 분석해봤다.
◆ 바이블의 탄생-방대한 세계관과 집단 창작
빅히트는 방탄소년단 음반에 세계관을 부여하는 실험을 했다. 학교 시리즈 3부작, 'pt.1' 'pt.2'로 이어지는 '화양연화' 시리즈, 기승전결로 연결되는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 등 연작형 앨범을 낸 것이다. 또한, 각 시리즈 사이에서도 이야기를 이어붙임으로써 팬들이 각 앨범을 유기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새 뮤직비디오에 떡밥(소설, 영화 등의 전개에서 독자·시청자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지점)을 뿌리고, 다음 뮤직비디오에서 거둬들인다. 전편을 봤던 사람에겐 후속작을 기다리게 만들고, 후속작부터 본 사람에겐 전작을 찾아보게 한다. 황선업 대중음악평론가는 "이전에도 단발성 기획으로 몇몇 앨범을 시리즈로 묶은 팀들은 있었지만 시리즈형 앨범을 주요 전략으로 삼은 것은 방탄소년단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성경이 66권으로 이뤄졌지만 하나의 세계관으로 이어지는 것과 유사하다. 이런 시리즈를 기획하게 된 데에는 시대 변화를 민감하게 읽은 방시혁 빅히트 대표의 통찰이 있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요즘 세대는 본인이 좋아하는 콘텐츠라면 규모가 아무리 방대하더라도 긴 시간을 투입해 공부하며 즐긴다"며 "스마트폰 시대에는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아날로그 시대와는 달리 방대한 정보 탐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아이언맨' '헐크' '토르' 등으로 이어지는 '마블' 시리즈, J J 에이브럼스 감독의 '클로버필드' 시리즈가 인기를 끄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다.
이에 더해 방시혁 대표는 집단 창작 방식을 적용하며 멤버들을 작사·작곡에 적극 참여시켰다. 방탄소년단 앨범 프로듀싱(제작)을 담당하는 피독은 멤버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충분히 하도록 한 후 본격적인 곡 작업에 들어간다고 밝힌 바 있다. 각 멤버는 노래에 자신의 고민을 담아 기존 K팝 그룹 노래에 부족했던 진정성을 넣게 됐다.
이는 한 권의 바이블 안에서 여러 저자의 문체와 개성을 즐길 수 있는 것과 유사하다. 2~3년 전에 아미(ARMY·방탄소년단 팬클럽)가 됐다는 대학생 박소현 씨(23)는 "멋있게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는 여타 아이돌과 달리 방탄소년단 노래에는 자기 꿈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담겨 있어서 좋다"고 했다.
선배 K팝 그룹과 달리 미국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비결도 여기에 있다. 대형 기획사의 체계적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보이·걸그룹은 주류 음악시장에서 '공장형 아이돌'이라고 비판받았지만 빅히트는 멤버 하나하나를 '작가'로 만듦으로써 이를 극복한 것이다. 김영대 음악평론가는 "도널드 트럼프 집권 이후 쏟아지는 가짜 뉴스 속에서 미국인들은 진정성 있는 노래에 높은 평가를 한다"고 말했다. 정병욱 음악평론가는 "기존에는 아이돌이 노래 제작에 참여한다고 해도 멤버 개성이나 스토리는 주로 마케팅용으로 활용했다"며 이전의 아티스트형 아이돌과 방탄소년단의 다른 점을 설명했다.
◆ 바이블의 전파-아미(ARMY)의 자발적 번역
주요 종교 경전이 세계로 전파되는 과정을 보면 신도들의 자발적 번역과 선교가 있었다. 아미도 10·20대 고민을 그대로 담은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하나의 바이블로 받아들이며 자발적으로 뮤직비디오를 번역해 전 세계로 전파했다.
이 과정에서 빅히트는 팬들이 즐길 만한 모바일 콘텐츠를 공급하는 데 주력했다. 방탄소년단 자체 제작 콘텐츠인 '방탄밤'과 '달려라 방탄'은 영어, 스페인어, 태국어 등 전 세계 다양한 언어로 번역돼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진출 발판이 됐다. 팬이라면 기꺼이 번역해 퍼뜨리고픈 콘텐츠를 대량 제작한 것이다. 이는 특히 미국 음악시장에 안착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유튜브에 따르면 지난 5~7월 방탄소년단 영상 콘텐츠 지역별 조회 비중은 미국이 11%로 압도적 1위를 달린다.
이 배경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문화 전파 경로의 중심이 될 것임을 일찍이 알아차린 방 대표의 혜안이 있었다. 지난해 그는 방탄소년단 성공 비결을 밝히며 "서구의 음악시장은 전통적인 미디어를 중심으로 견고하게 형성돼 주류와 비주류 간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소셜 미디어가 대두하고 온라인 플랫폼이 다변화되면서 음악 산업의 축이 거세게 흔들렸다"고 언급한 바 있다. 자본과 휴먼 네트워크 없이 공략하기 힘든 올드 미디어 대신 SNS에 어울리는 콘텐츠를 주로 제작함으로써 세계 음악시장에 안착한 것이다.
◆ 바이블의 진화-제 2, 3의 BTS 나올까
문제는 빅히트 그 자체인 방탄소년단이 내년이면 데뷔 7년차에 접어든다는 것이다.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가 공표한 대중문화예술인 표준전속계약서는 연예인과 기획사 간의 합리적인 계약기간을 7년으로 명시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재계약 불발 리스크 때문에 빅히트 시가총액이 1조원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시선을 보이기도 한다. 멤버 진이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회사와 멤버들과 (재계약 관련)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며 "곧 좋은 소식을 들려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주도권은 여전히 방탄소년단에게 있는 상태다.
이에 빅히트는 제2, 3의 바이블을 만들 방법을 고민 중이다. CJ ENM과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 출발점이다. 빅히트의 보이그룹 제작 능력과 CJ ENM의 오디션 프로그램 경쟁력을 합쳐 엔터테인먼트 업계 경영방식을 또 한번 혁신하려는 것이다. 이밖에도 멜론에 대항할 음원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SK텔레콤, SM, JYP와 손잡고, 7대 기획사가 모여 K팝 뮤직비디오 관리 회사를 설립하는 등 동맹 전략을 적극 추진 중이다. 정병욱 평론가는 "(이러한 동맹 전략은) 빅히트에서 곧 나올 신규 그룹의 론칭에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다만, 새 그룹이 제2의 방탄소년단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기 어려운 만큼 회사의 방탄소년단 의존도를 당장 낮추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창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 대형 연예기획사는 문어발식 사업을 하는 대기업처럼 움직여왔다. A·B·C팀 등 다양한 그룹을 보유하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카드를 하나씩 꺼내가며 트렌드 변화에 속도감 있게 대응했다. A팀이 침체기에 빠지면 B팀과 C팀에서 나온 매출로 이를 만회하는 포트폴리오 전략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보이그룹 방탄소년단(BTS)만으로 한국 연예기획사 역사상 가장 큰 성공을 맛보며 엔터테인먼트 회사 운영 방식을 새롭게 정립했다. 상장 후 시가총액은 최대 2조5000억원으로 예상되고,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은 기존 3대 대형 기획사를 크게 앞질렀다. 매일경제는 방탄소년단을 데뷔시킨 후 5년 만에 한국 연예기획사의 경전으로 만든 빅히트를 '바이블(Bible·성경 또는 종교의 경전)'이라는 키워드로 분석해봤다.
◆ 바이블의 탄생-방대한 세계관과 집단 창작
빅히트는 방탄소년단 음반에 세계관을 부여하는 실험을 했다. 학교 시리즈 3부작, 'pt.1' 'pt.2'로 이어지는 '화양연화' 시리즈, 기승전결로 연결되는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 등 연작형 앨범을 낸 것이다. 또한, 각 시리즈 사이에서도 이야기를 이어붙임으로써 팬들이 각 앨범을 유기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새 뮤직비디오에 떡밥(소설, 영화 등의 전개에서 독자·시청자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지점)을 뿌리고, 다음 뮤직비디오에서 거둬들인다. 전편을 봤던 사람에겐 후속작을 기다리게 만들고, 후속작부터 본 사람에겐 전작을 찾아보게 한다. 황선업 대중음악평론가는 "이전에도 단발성 기획으로 몇몇 앨범을 시리즈로 묶은 팀들은 있었지만 시리즈형 앨범을 주요 전략으로 삼은 것은 방탄소년단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성경이 66권으로 이뤄졌지만 하나의 세계관으로 이어지는 것과 유사하다. 이런 시리즈를 기획하게 된 데에는 시대 변화를 민감하게 읽은 방시혁 빅히트 대표의 통찰이 있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요즘 세대는 본인이 좋아하는 콘텐츠라면 규모가 아무리 방대하더라도 긴 시간을 투입해 공부하며 즐긴다"며 "스마트폰 시대에는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아날로그 시대와는 달리 방대한 정보 탐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아이언맨' '헐크' '토르' 등으로 이어지는 '마블' 시리즈, J J 에이브럼스 감독의 '클로버필드' 시리즈가 인기를 끄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다.
이에 더해 방시혁 대표는 집단 창작 방식을 적용하며 멤버들을 작사·작곡에 적극 참여시켰다. 방탄소년단 앨범 프로듀싱(제작)을 담당하는 피독은 멤버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충분히 하도록 한 후 본격적인 곡 작업에 들어간다고 밝힌 바 있다. 각 멤버는 노래에 자신의 고민을 담아 기존 K팝 그룹 노래에 부족했던 진정성을 넣게 됐다.
이는 한 권의 바이블 안에서 여러 저자의 문체와 개성을 즐길 수 있는 것과 유사하다. 2~3년 전에 아미(ARMY·방탄소년단 팬클럽)가 됐다는 대학생 박소현 씨(23)는 "멋있게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는 여타 아이돌과 달리 방탄소년단 노래에는 자기 꿈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담겨 있어서 좋다"고 했다.
선배 K팝 그룹과 달리 미국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비결도 여기에 있다. 대형 기획사의 체계적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보이·걸그룹은 주류 음악시장에서 '공장형 아이돌'이라고 비판받았지만 빅히트는 멤버 하나하나를 '작가'로 만듦으로써 이를 극복한 것이다. 김영대 음악평론가는 "도널드 트럼프 집권 이후 쏟아지는 가짜 뉴스 속에서 미국인들은 진정성 있는 노래에 높은 평가를 한다"고 말했다. 정병욱 음악평론가는 "기존에는 아이돌이 노래 제작에 참여한다고 해도 멤버 개성이나 스토리는 주로 마케팅용으로 활용했다"며 이전의 아티스트형 아이돌과 방탄소년단의 다른 점을 설명했다.
◆ 바이블의 전파-아미(ARMY)의 자발적 번역
주요 종교 경전이 세계로 전파되는 과정을 보면 신도들의 자발적 번역과 선교가 있었다. 아미도 10·20대 고민을 그대로 담은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하나의 바이블로 받아들이며 자발적으로 뮤직비디오를 번역해 전 세계로 전파했다.
이 과정에서 빅히트는 팬들이 즐길 만한 모바일 콘텐츠를 공급하는 데 주력했다. 방탄소년단 자체 제작 콘텐츠인 '방탄밤'과 '달려라 방탄'은 영어, 스페인어, 태국어 등 전 세계 다양한 언어로 번역돼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진출 발판이 됐다. 팬이라면 기꺼이 번역해 퍼뜨리고픈 콘텐츠를 대량 제작한 것이다. 이는 특히 미국 음악시장에 안착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유튜브에 따르면 지난 5~7월 방탄소년단 영상 콘텐츠 지역별 조회 비중은 미국이 11%로 압도적 1위를 달린다.
이 배경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문화 전파 경로의 중심이 될 것임을 일찍이 알아차린 방 대표의 혜안이 있었다. 지난해 그는 방탄소년단 성공 비결을 밝히며 "서구의 음악시장은 전통적인 미디어를 중심으로 견고하게 형성돼 주류와 비주류 간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소셜 미디어가 대두하고 온라인 플랫폼이 다변화되면서 음악 산업의 축이 거세게 흔들렸다"고 언급한 바 있다. 자본과 휴먼 네트워크 없이 공략하기 힘든 올드 미디어 대신 SNS에 어울리는 콘텐츠를 주로 제작함으로써 세계 음악시장에 안착한 것이다.
◆ 바이블의 진화-제 2, 3의 BTS 나올까
문제는 빅히트 그 자체인 방탄소년단이 내년이면 데뷔 7년차에 접어든다는 것이다.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가 공표한 대중문화예술인 표준전속계약서는 연예인과 기획사 간의 합리적인 계약기간을 7년으로 명시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재계약 불발 리스크 때문에 빅히트 시가총액이 1조원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시선을 보이기도 한다. 멤버 진이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회사와 멤버들과 (재계약 관련)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며 "곧 좋은 소식을 들려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주도권은 여전히 방탄소년단에게 있는 상태다.
이에 빅히트는 제2, 3의 바이블을 만들 방법을 고민 중이다. CJ ENM과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결정한 것은 이 출발점이다. 빅히트의 보이그룹 제작 능력과 CJ ENM의 오디션 프로그램 경쟁력을 합쳐 엔터테인먼트 업계 경영방식을 또 한번 혁신하려는 것이다. 이밖에도 멜론에 대항할 음원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SK텔레콤, SM, JYP와 손잡고, 7대 기획사가 모여 K팝 뮤직비디오 관리 회사를 설립하는 등 동맹 전략을 적극 추진 중이다. 정병욱 평론가는 "(이러한 동맹 전략은) 빅히트에서 곧 나올 신규 그룹의 론칭에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다만, 새 그룹이 제2의 방탄소년단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기 어려운 만큼 회사의 방탄소년단 의존도를 당장 낮추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창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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