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작가 팀 아이텔(46)은 카메라로 일상의 순간을 포착한다. 사진 속 이미지들을 조합한 후 붓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6년만에 학고재갤러리에서 국내 개인전을 여는 그는 "현실을 기반으로 세상을 바꾼다"고 말했다.
그는 순간의 예술인 사진을 이용해 회화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스케치를 하다보면 특정한 순간을 놓칠 때가 있다. 좋은 풍경을 얻기 위해 사진을 찍는게 아니라 그 순간을 담아내기 위해서다. 주변을 막 찍은 후 필요한 이미지 부분만을 사용해 그 순간을 재건한다. 거기에 머리 속에서 나온 이미지를 조합해 그림을 그린다."
이런 작업 과정을 거친 그의 작품은 독특한 아우라(aura)를 만들어낸다. 얼핏 우리 주변의 풍경 같지만 자세히 보면 전혀 다른 세계다. 아이텔이 그린 새로운 세상이다.
그는 독일 문예평론가 발터 베냐민(1892~1940)이 정의한 아우라 개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베냐민은 예술 작품의 아우라를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어떤 멀리 있는 것의 일회적인 나타남'으로 설명했다.
최근작 '암층'(210×190㎝)은 바위산 등반 풍경처럼 보이지만 비현실적인 오브제가 등장한다. 오른쪽 바위에 검은 갑각류의 일부분이 보이는 것 같다. 거미냐고 묻자 작가는 "바퀴벌레일 수도 있다"며 답하며 웃었다. "사실은 무대를 표현했다. 가짜 산으로 느끼도록 그렸다. 원래 사진 속 산에는 돌이 거의 없었다. 내 상상을 더한 것이다. 저 너머에 누가 있는지 모르고 전체를 알 수 없다는 것에 집중해 작업했다."
그 반대로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물이나 사람이 의외로 가까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곯아떨어진 남자, 거리를 떠도는 노숙자, 쓰레기 더미 등 도심의 그늘진 풍경 이미지를 담는 이유다. 작가는 "회화를 통해 모든 존재를 인식하고 각각의 소중함을 깨닫게 만들고 싶다"며 "고개를 숙이거나 뒷모습,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은 그림 속 인물이 내 친구일 수도 있고 나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 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한국 개인전 제목을 '멀다. 그러나 가깝다'로 정했다. 멕시코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의 집에서 영감을 받은 최근작 '건축학 학습'(바라간)에 등장하는 인물 역시 다양한 상상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림 속 남자가 춤을 추는 것인지, 유리볼에 투영된 자기 모습을 바라보는 것인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계속 생각하면서 그림 앞에 머물게 만드는게 작품의 매력이다.
길이 2m 가까운 대작들 틈에서 '왕관(왕)'은 22㎝에 불과해 눈길을 끈다. 작가는 "큰 그림은 시야를 넓혀주고 공간에 들어가 있는 느낌 때문에 좋고, 작은 그림은 이미지에 집중해야 하고 친밀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아이텔은 독일 현대회화를 이끌어가는 뉴-라이프치히파의 대표 작가로 꼽힌다. 슈투트가르트 대학교에서 문학과 철학을 전공한 그는 영국 표현주의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 회고전을 본 후 진로를 바꿨다. 작가는 "그림에 이미지 뿐만 아니라 철학, 에너지, 감정을 담을 수 있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어릴때부터 낙서를 즐겼고 꾸준히 드로잉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적인 갤러리 페이스 전속 작가로 2015년부터 프랑스 파리의 유명 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 회화과 최연소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시는 11월 12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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