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팬들 사이에 믿고 보는 번역가가 있다. '로마인 이야기'의 김석희, '장미의 이름'의 이윤기 등이 1세대라면, 존 버거의 번역가 김현우, 로맹 가리의 김남주, 박현주 등은 2세대라고 할 수 있겠다. 트루먼 카포티 전집, 찰스 부코스키 선집 등 혀를 내두르는 어려운 작업을 맡았고,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존 르카레의 '영원한 친구' 등의 명작을 번역해 이름난 박현주 번역가(42)가 소설가로 변신 했다. 2권에 총 708쪽에 달하는 데뷔작 '나의 오컬트한 일상'(엘릭시르)을 내놓으면서다.
27일 만난 작가는 "2002년부터 해온 일이지만 나를 번역가만로만 한정지어 본 적은 없다. 언어학 관련 글이나 드라마비평은 물론 북칼럼니스트로도 많은 글을 썼다. 그러니 어쩌면 매문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는 "소설과 번역은 공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도 했다. "방대한 자료 조사를 하는 취재를 마친 뒤에 글쓰기를 시작한다는 게 같았어요. 다만 기술적으로 번역은 어느 시점이 되면 '자율주행'이 시작되죠. 소설에 있고 번역에 없는 건 기획이죠. 체적 이야기를 먼저 만들고 문장을 써나갔는데, 번역에는 없는 과정이죠."
소설은 프리랜서 작가인 도재인이 일상 속 미스터리한 일을 하나둘 풀어나가는 추리 소설의 도식을 충실히 따른다. 담양, 대구, 제주, 교토 등을 배경으로 약혼자 실종, 돈봉투 도난, 학교 앞 뺑소니, 유령의집 등 6개의 사건의 비밀을 재인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미스 와플 못지 않은 활약으로 밝혀낸다. 각각의 사건이 숨겨둔 복선은 마지막 사건에서야 하나로 조합되고, 마침내 큰 비밀이 밝혀지니 후반부로 갈수록 더 흥미진진하다.
첫 장부터 재인이 친구와 함께 점집을 찾으며 시작되는 점도 독특하다. 별자리점, 타로카드, 부적, 굿 등 친숙한 오컬트 소재가 사건의 중심이 되고, 피 한방울 등장하지 않는 이 추리소설은 대신 '미스터리+오컬트+로맨스'라는 독특한 조합으로 독자들을 홀린다. 그는 "부적을 달고 다닌다던가, 아침마다 운세를 받아보는 건 일상적으로 누구나 하는 일이다. 신비한 일이 아닌 이런 소재로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작가가 던져주는 6개의 수수께끼를 다 풀고 나면 이 소설은 결국 우연과 운명이 만들어내는 사랑이라는 가장 큰 미스터리에 관한 소설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는 "들어가볼 수 없는 대륙과 같은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제가 가장 궁금한 건 그 질문이었다. 살인사건은 실생활에서 잘 일어나지 않지만 우리는 늘 친구의 약혼자가 친구를 정말 좋아할까 이런 고민을 하지 않나. 다른 사람의 마음은 너무 신비한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을 앞으로 계속 쓸 건지 슬쩍 물어봤다. 차기작을 이미 구상 중이고, 아마도 '연애 소설'이 될 것 같다고 귀띔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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