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 '주경야독(晝耕夜讀)'은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글을 읽는다는 뜻이다. 일하느라 바쁜 틈에도 꿋꿋이 공부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하지만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광고 문구가 있듯 일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친 직장인들은 즐길 자격이 있다. 이에 직장인들이 퇴근 후 삶을 보다 즐길 수 있도록 '흥나는' 장소·문화를 '주경야흥(晝耕夜興)' 코너를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주>
"재즈는 꿈이야. 충돌하고 화해하고···매 순간이 새로워. 정말 흥미진진하다고!"
영화 '라라랜드'에서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은 재즈를 좋아하지 않는 미아(엠마 스톤)에게 이 같이 말한다. 배우 지망생인 미아는 재즈 피아니스트인 세바스찬을 만나며 재즈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재즈의 부흥을 꿈 꾸던 세바스찬은 헐리우드에 재즈클럽을 열겠다는 포부를 결국 실현한다.
로스앤젤레스의 별칭인 라라랜드는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의 세계'를 의미한다. 영화에서 재즈는 주인공들을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그들은 재즈를 듣거나 부를 때 꿈의 공간으로 빠져 들어간다.
재즈는 어떤 음악 장르보다 연주자의 감각과 즉흥적인 표현력을 중시 여긴다. 따라서 재즈클럽에 직접 가서 라이브로 들으면 더 감흥을 느낄 수 있다. 이에 일상에 지친 우리를 라라랜드로 인도해줄 서울 대표 재즈클럽 원스인어블루문(Once In A Blue Moon), 올댓재즈(All That Jazz), 천년동안도 3곳을 차례로 방문해봤다.
◆ 원스인어블루문(Once In A Blue Moon)
원스인어블루문(이하 블루문)은 서울 청담동 소재의 재즈클럽이다. 번역하면 '푸른 달에서의 한 때'라는 이름으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의미한다.
대우건설에서 샐러리맨으로 19년 동안 근무했던 임재홍 씨(60)는 1997년 자신의 온 재산을 털어 블루문을 개업했다. 대학 시절 밴드 활동을 하는 등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임 씨는 오랜 시간 동안 재즈클럽을 열겠다는 소망을 마음에 품고 살았다고 한다. 그는 고객들이 최상의 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일류 호텔 출신 주방장과 지배인을 영입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에디터가 블루문을 찾은 건 주말 이른 저녁. 입구에 들어서자 직원이 "식사를 하실 건가요?"라고 물었다. 식사를 하면 무대 가까이에 있는 좌석에 앉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1층 뒤편이나 2층 자리에 앉아야 한다.
식사는 생략했지만 일찍 온 덕분에 비용 대비 명당인 1층 뒷자리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말끔한 호텔리어 느낌의 직원이 메뉴판을 가져다줬다. 메뉴판을 보니 가격대는 역시 예상했던 대로 비싼 편이었다. 와인은 한 병에 기본 10만~20만원, 잔술은 2만원 정도다. 식사를 할 경우 단품 또는 코스로 주문할 수 있다.
원스인어블루문 1층 전경 [사진 제공 = 원스인어블루문]
원스인어블루문 1층에서 2층 올라가는 계단 사이 [사진 제공 = 원스인어블루문]
원스인어블루문 2층 전경 [사진 제공 = 원스인어블루문]
술과 간단한 안주를 시킨 뒤 매장 내부를 둘러봤다. 무대 주변 인테리어는 식사 장소인 만큼 고급 레스토랑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줬다. 그 외 공간들은 재즈 뮤지션들의 사진이나 악기, 와인 등을 진열해 보다 캐주얼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에디터는 외국인으로 구성된 팀과 한국으로 구성된 팀 등 총 두 팀의 재즈 공연을 감상했다. 술과 분위기에 취해 기분 좋게 음악을 감상하긴 했지만 익히 알만한 노래가 안 나온 점은 아쉬웠다.
이곳은 꼭 외국 영화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분위기 좋았다. 하지만 그만큼 가격은 착하지 않았다. 평소에 가기엔 부담스럽고 연인 사이에 기분 내고 싶은 날이나 가족 생일날 방문한다면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블루문은 식사를 할 경우에만 예약이 가능하다.
블루문을 나서며 이런 생각도 들었다. 재즈의 고향은 미국 뉴올리언스다. 프랑스령이었던 이곳에서 흑인 노예의 애환을 담은 음악과 유럽 음악 양식이 어우러져 재즈라는 새로운 음악 장르가 탄생한 것이다. 재즈의 고급화도 좋지만 식사 여부에 따라 좌석을 분리해놓는다거나 식사를 하지 않으면 예약조차 받지 않는 등의 매장 방침은 재즈의 본질과는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닐까.
◆ 올댓재즈(All That Jazz)
"어느 가수가 'Ain't No Sunshine'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걸 들었는데 '내 안엔 이만큼 소울(Soul)이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샤우팅(Shouting)을 해야 노래를 잘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편견을 깨줬죠."
에디터가 올댓재즈를 찾은 날 무대에 오른 이지현 퀘텟의 보컬은 이 같이 말한 후 Ain't No Sunshine을 불렀다. '진정한 재즈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말이었다. 모든 음악이 그렇겠지만 특히 재즈는 마음의 울림을 중시한다는 점을 또 한 번 느꼈다.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올댓재즈는 1976년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재즈클럽이다. 1년 365일 중 현충일 하루를 제외하고 364일 라이브 공연이 이뤄진다. 입장 시 공연비 5000원을 현금으로 내야 한다. 선착순으로 앉고 싶은 좌석에 앉을 수 있다. 좌석에 앉더라도 꼭 음식을 시킬 필요는 없다. 맥주·칵테일 한잔하며 가볍게 재즈를 즐길 수 있다. 음식값도 대체로 1만~3만원대로 그다지 비싸지 않다.
이른 저녁 시간의 올댓재즈 [사진 = 꼬요미 에디터]
해가 완전히 지고 난 후 무르익은 올댓재즈 [사진 = 꼬요미 에디터]
이곳은 1~2층에 걸쳐 크게 난 창문이 인상적이다. 이 창문을 통해 햇빛이나 구름, 비바람 등 날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런 요소는 재즈를 감상하는 분위기마저 좌지우지하는 듯했다. 에디터가 입장했을 때에는 아직 해가 지지 않았었다. 맥주를 마시며 경쾌하게 음악을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해가 지고 사람이 하나둘 늘어나며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점점 와인이나 위스키가 당기는 기분으로 변해갔다.올댓재즈는 재즈가 듣고 싶을 때면 언제든 찾기 좋다. 좌석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점은 양날의 검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즐기기에는 제격이지만 재즈의 맛을 홀로 느끼기에는 불편하다.
[사진 = 올댓재즈 홈페이지 캡처]
[사진 = 올댓재즈 홈페이지 캡처]
◆ 천년동안도
[사진 = 꼬요미 에디터]
1997년 서울 대학로에 문을 연 천년동안도는 20년 세월 동안 굴곡을 겪었다. 한때 케니 가렛, 스팅, 데이브 코즈 등 유명 해외 뮤지션이 방문해 공연할 정도로 유명세를 떨쳤지만 사정상 약 2년간 문을 닫았다. 지난해 9월 낙원동에서 다시 오픈한 뒤 지금까지 영업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장소가 협소해 오는 8월 대학로로 매장을 확장 이전한다.천년동안도는 대한민국 라이브 공연의 합법화를 이룬 역사적인 장소다. 과거 일반음식점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는 건 불법이었지만 천년동안도가 헌법 소원을 넣고 승리해 현재와 같이 합법적으로 라이브 공연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진 = 꼬요미 에디터]
매장이 아담해 어느 자리에 앉아도 무대가 잘 보였다. 앞서 방문한 블루문·올댓재즈와 달리 이곳에서는 친숙한 음악을 많이 들을 수 있다. 나탈리 콜의 'L-O-V-E', 마이클 잭슨의 'Love Never Felt So Good',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 등 대부분 우리가 아는 노래를 들으니 반가웠다. 재즈에 관심이 없더라도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을 지향한다는 천년동안도만의 고집이 느껴졌다.입장료는 평일 5000원, 주말 8000원이다. 특별 공연의 경우에는 별도로 책정하고 있다. 하지만 와인이나 세트 메뉴를 주문할 시 입장료는 4인까지 받지 않는다. 가장 저렴한 음료는 1만3000원이며 와인은 4만5000원부터 시작된다. 음식도 대부분 1만~2만원대로 합리적인 편이다.
[꼬요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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