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사동의 명물은 통인 가게다. 일제강점기였던 1924년 세워진 이래 전국의 수준 높은 고미술품은 다 이곳으로 집결했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도 통인에서 고미술품을 샀다. 통인화랑이 속한 통인 가게가 몇 년만 지나면 100년이라는 금자탑을 쌓는다. 스물 셋의 나이에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반세기 동안 이곳을 키운 김완규 통인그룹 회장은 "올해 강화도에 작은 미술관 10개를 지을 계획이다. 강화도를 부자 섬으로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고미술상에서 시작해 국내외 운송업인 통인인터내셔날과 통인익스프레스를 세우고 서류보관 창고·파쇄·청소업까지 거침없이 확장한 그의 성공 비결도 들어봤다. ―명함에 통인그룹 대표나 회장 대신 '주인'이라고 쓰여 있는데.
▷젤 부러웠던 게 내 선친이 통인가게 주인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하나씩 만든 법인은 100% 내가 다 주인이다. 상속할 때 문제가 되겠지만 진짜 주인이 되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주인이라고 쓸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지 않을까.
―서울토박이인데 강화도에 미술관을 짓는 이유는.
▷강화도에 도자기를 굽는 가마가 있고, 통인도자연구소도 있다. 수년 전 당시 소니 회장과 강화도에 갔는데, 진짜 보여줄 게 없어서 너무 창피했다. 강화도는 몽고 침입에 고려가 46년간 도망 간 곳 아닌가. 그런데 남아 있는 유적지가 별로 없다. 그 때 미술벨트를 만들어 볼거리를 줘야겠다 생각했다. 강화도 전체를 잘사는 도시로 만들어 주려면 좋은 양질의 관광객이 많아야 한다.
―강화도의 장점은.
▷일본 사람들이 말은 안 하지만 좋아하는 곳이 강화도다. 화산의 섬이고, 강화도의 반은 바닷물이고, 반쪽의 반은 강물이다. 바닷물과 강물이 섞여 민물고기와 바다생선이 다 있다. 감자도 샛노랗고, 순무도 유명하고 쌀도 조선시대 최고지 않았나.
―미술관은 언제 완공되나.
▷5월 말 군에서 승인을 받으면 바로 첫 미술관 '박물관 아래 절집' 착공에 들어간다. 각각 100평 규모의 작은 미술관 10개를 섬 둘레에 지을 예정이다. 첫 미술관은 9월 1일 오픈한다. 10개 중 6개는 이미 디자인됐고 각각의 미술관마다 스토리가 담긴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등 지난 50년간 컬렉션한 유물 뿐 아니라 현대미술 작가 개인전도 보여줄 계획이다.
― 3남이신데 가업을 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마당도 쓸고, 가구도 닦고, 배달도 했다. 열일곱살에 아버지께서 "오늘부터 고사를 니가 지내라"고 했다. 1년에 봄 가을, 많게는 매달 지내는 고사는 장사꾼에게 엄청 중요한 일이다.
―어떻게 장사를 배웠나.
▷어느 날 이화여대 학생들이 가게에 왔다. 나에게는 항아리 때 닦는 일만 시키시던 아버지께서는 학생들에게 정말 잘 가르쳐주시더라. 술 먹고 그 다음날 가게가 나가지 않았다. 왜 나오지 않았냐는 아버지 추궁에 "아버님 밑에서 안 배우겠습니다. 이대생들에게는 잘 가르쳐주시면서…"라고 서운해했다. 그 때 처음으로 등짝을 얻어맞았다. 항아리 때를 빼주거나 가구를 닦다 보면 그림이나 서랍의 크기와 위치 등 디테일을 배울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손으로 배우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스물셋에 가업을 잇다니 파격이다
▷어느 날인가 아버지가 통장하고 도장을 주면서 "오늘부터 니가 통인 주인이다"라고 하면서 무서운 얘기를 하셨다. "어느 장사든 망하지 않는 장사가 없다. 니가 사장이기 때문에 망해도 널 부를 데는 없을 것이다. 망하면 동대문시장에서 다시 리어카를 끌고 시작하라"고. 어린 자식에게 사업을 물려줬다는 소문이 인사동에 파다하자 노인네들이 아버지를 붙들고 만류를 했다. 그 때 아버지가 "나는 내 아들을 믿는다"고 했다더라. '아버지가 날 믿어주는데 실수하면 안되겠다' '놀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골동품에서 시작해 운송과 창고업까지 진출했다.
▷골동품을 취급하다 보니 고미술품을 국내외에 안전하게 운송하는 일을 생각했고, 운송일을 하다보니 서류보관 업무도 하게 됐다. '통인안전보관'은 전국에 70개 회사가 있다. 외국계 보험회사와 신용카드사들이 다 고객이다. 또 종이를 잘게 부수는 파쇄컴퍼니도 세웠다.
―사업 성공의 비결이라면.
▷내가 필요해서 한 게 아니라 남이 필요한 걸 먼저 생각했다. 남이 보고 싶고, 먹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우리가 탱크도 닦아주고, 미군 앞마당도 다 쓸어준다. 요즘 군인들이 마당을 쓸지 않는다. 다 우리가 한다. 운송과 관련해 주한미군 이사 물량의 60%를 우리가 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쉽게 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가 벌어서 자기가 가져가는 것을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잘하게끔, 또 돈을 벌게끔 돕는 게 중요하다. 나는 편의점 사업을 해도 성공할 자신이 있다. 소매상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큰 그룹이 하는 걸 따라 하면 내가 망한다. 나는 불황에도 되는 장사만 했다.
―청년실업 문제를 풀 열쇠는.
▷사실 우리처럼 소규모 회사는 젊은 사람이 없어서 난리다. 청소나 이삿짐 같은 3D 업종에는 젊은이들이 몰리지 않는다. 다들 대기업에만 가려고 한다.
―미술에서 시작해 미술 이외의 것을 하고 있는데.
▷사실 미술이 아닌 게 아무것도 없다. 통인의 상징이 '까치호랑이'인데 이 상표권이 나에게 있다. 까치호랑이 이미지를 쓰려면 나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모든 게 디자인이고 조형이다.
[이향휘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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