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이 올해 첫 ‘1000만 영화’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 전무후무한 오프닝스코어(87만 2232명)와 함께 파죽지세로 관객 몰이에 나선 이 영화는 개봉(7월 20일) 보름 만에 925만 관객(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넘어섰다. ‘실미도’(2003년) 이래 18번째 ‘1000만 영화’ 탄생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 등 쟁쟁한 경쟁작이 줄이어 개봉하면서 1일 관객수는 줄었지만, 이번 주말을 지나 다음주 초순이면 1000만명 돌파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1억원짜리 저예산 애니메이션(이하 애니)만 찍던 연 감독이 첫 상업영화로 ‘1000만 관객’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고무적인 일”이라고 했다.
한국 관객들이 ‘부산행’을 올여름 1000만 영화로 만드는 데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 중 영화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두루 수렴해 5가지 공통 요인을 추려냈다.
우선 ‘칸영화제 효과’다. 애초 ‘부산행’은 영화계 안팎으로 큰 조명을 받진 못했다. 사회파 애니 연출가의 첫 실사영화라는 점이 큰 리스크로 여겨졌다. 한국 블록버스터에 좀비 소재가 거의 시도된 적 없었다는 사실도 흥행 기대를 그리 높여주진 못했다.
그런 영화가 지난 5월 칸영화제에 초청되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역대 칸영화제 최고의 미드나잇 스크리닝”이라는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의 찬사와 함께 평단의 격찬이 쏟아진 것. 한 영화계 관계자는 “칸에서의 호평이 국내외로 알려지면서 관객들 기대감도 상승곡선을 탔다”며 “이 기대감이 오프닝스코어에서 폭발해 흥행열차에 올라탄 것”이라고 했다. 한 배급사 관계자도 “업계의 ‘부산행’에 대한 기대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었지만 칸에서의 바람몰이가 일단 주효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나 ‘칸영화제 효과’만으로 설명하긴 어딘가 부족하다. 폭발적인 초기 성적이 흥행의 지속성을 보장해줄 순 없는 탓이다. 900만명까지 단숨에 견인할 수 있던 데에는 ‘좀비 소재’라는 신선함과 상반기 이래 관객의 ‘영화 갈증 증폭’도 커다란 요인이었다 .
한 극장 관계자는 “2013년 ‘월드워Z’ 성공을 기점으로 ‘B급 영화’로 치부되던 좀비물이 메인스트림 영화 소재로도 어필 가능하다는 인식이 커졌다”며 “이질적인 외국인 좀비가 아닌 우리 일상의 한국인 좀비라는 점이 더욱 리얼하게 다가왔을 것”이라고 했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도 “아무래도 무거운 역사극보다 좀비 소재라는 점이 관객들 입장에선 가볍고 부담없는 오락물로 느껴졌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올 상반기 이렇다 할 오락영화가 없었다는 점도 관객의 갈증을 키우는데 한 몫 했다. 지난 5~6월 ‘곡성’(687만명)과 ‘아가씨’(428만명)가 높은 작품성과 소재의 신선함으로 많은 관심을 샀지만 매니아적 성격으로 인해 추가 관객을 모으진 못했다. 또 다른 배급사 관계자는 “올 상반기 오락적으로 확 잡아끄는 영화가 없었던 게 사실”이라며 “더운 여름, 좀비한테 쫓긴다는 급박한 설정은 다수 관객의 영화 갈증을 풀어주는 데 제격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적절한 신파로 전 연령대를 아우른 배우들의 호연 또한 주효했다. 부산행 KTX에 탑승한 주·조연 배우들은 거의 전 연령대를 겨냥하고 있다 해도 무방하다. 극 중 초등학생 수안(김수안)과 고등학생 진희(안소희), 영국(최우식)은 10~20대를 겨냥한 캐스팅이다. 근육질의 푸근한 아저씨 상화(마동석)와 그의 임신부 아내 성경(정유미), 그리고 수안의 아빠 석우(공유) 등은 30~40대를 대변한다. 그리고 인간의 이기심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용석(김의성)과 시골 할머니 인길(예수정)·종길(박명신) 등은 50대 이상을 몰입시키는 데 큰 효과를 발휘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거의 모든 연령대를 포괄하는 배우 캐스팅으로 적재적소의 신파를 펼쳐 보인 것은 관객들의 좀비 스트레스를 상쇄시킨 효과를 발휘했다”고 말했다.
오락물의 외피를 두르지만 한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로써의 영화적 기능에 비교적 충실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돼지왕’ ‘사이비’ 등 강한 사회 비판적 성격의 애니들을 연출해 온 연상호 감독 답게 각자도생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이기성’을 이번에도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이를테면 제 한 몸 살아남기 위해 타인의 희생에 눈감아버리는 고속버스 상무 용석의 경우가 단적인 예다.
강유정 평론가는 “연 감독은 한국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이기심’과 ‘이타심’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로 잘 접근하는 사람”이라며 “모두가 다 살아남는 뻔한 결말을 추구하지 않으면서 그러한 주제의식을 이번 영화에 잘 담아낸 게 주효했던 것 같다”고 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 또한 “(연 감독의)그간 작품 만큼은 아니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펼쳐지는 인물들 간 드라마로 나름의 사회적인 메시지를 잘 전달했다”고 말했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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