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67) 옹호론자를 한그릇에 담아내는 단어가 있다. 하루키스트(Harukist).
하루키는 때로 호불호가 갈려도, 하루키가 쓴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의의 숲‘)’를 읽지 않은 자가 없던 때가 있어서, 하루키는 한때 모든 누구의 소설가였다. 순(純)문학과 대중성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하루키스트 현상은 만들어졌다.
일본 소설 거장의 자기고백록 두 권이 서점가에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하루키의 첫 자전적 에세이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현대문학 펴냄)는 출간 후 보름이 지난 10일까지 5만부 판매고를 올렸다. 알라딘 종합 베스트셀러 1위,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2위로도 올랐다.
일본 가수 겸 소설가 가와카미 미에코(40)와 하루키가 나눈 대담이 실린 월간 ‘현대문학’ 5월호는 전월보다 200부 더 찍었음에도 열흘새 2500부 완판을 앞뒀다. 거장의 민낯과 유명작의 안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하루키 현상’을 이끄는 중이다.
두 책에 담긴 무라카미 하루키 심연의 세 가지 키워드는 ‘캐비닛’과 ‘링’과 ‘관계’다. 모든 인간은 내면에 캐비닛을 가졌다는 상상으로 하루키는 운을 뗀다.
“내 안에 커다란 캐비닛이 있고, 거기에 서랍이 잔뜩 달려 있다”고 비유한 하루키는 우리 모두가 가슴에 담아둔 여러 분리된 공간을 설정한다. 하루키는 여기서 “소설을 쓰다가 필요한 때에 필요한 기억의 서랍이 열려준다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말한다. 기억과 망각 사이에 벌어진 쟁투의 결과물이 바로 소설이며, 모든 이의 경험이 문학이 될 수 있음을 설파한다.
문학계라는 가상공간 ‘링’은 그가 선 무대다. 하루키는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가능하면 나밖에는 할 수 없는 일을 진지하게 추구”하려는 이들을 두고 “링에, 어서오십시오”라는 말로 인생의 링에 오르라고 설득한다. 모든 이들이 항상 자신만의 ‘링’에서 고군분투하는 존재이며, 링에서 펼친 동작의 성패는 자기자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깨달음을 건넨다.
소설이란 ‘가정(假定)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것’이란 하루키만의 문학관도 담겼다. 하루키는 “리얼리티란 특징적인 게 아니라 종합적인 것이며 시대의 추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며 “극히 보통으로, 내가 느끼는 대로 써 내려갈 뿐”이라고 설명한다. 인류가 ‘가정의 공식’으로 저 먼 우주의 원리를 독파했듯, 소설가는 ‘가정의 문장’이 가득한 글로 세계의 겉과 속을 정연하게 파헤친다는 소명의식을 일러준다.
세계 현대문학에서 그는 최정상의 위치에 섰지만 하루키에게도 에게도 한때 책은 어디까지나 ‘취미’였던 날들이 있었다. 하루키는 “우연한 계기로 글을 쓰게 됐고 ‘좀 더 제대로 된 작품을 써보고 싶다. 분명 쓸 수 있다’는 생각에 그대로 써 내려갔더니 내가 쓰고 싶은 세계가 점점 커져가고, 그게 재미있어서 지금까지 35년을 계속 소설을 썼다”고 털어놨다.
‘노르웨이의 숲’으로 관심을 받은 뒤, 오히려 외면받을까 두려웠다는 자기고백도 놀랍다. “전에는 괜찮았는데 이번에 새로 나온 건 전혀 아니야. 못 읽겠더라”라고 비판받는 상상에 평생 시달렸다는 그는 “‘노르웨이의 숲’ 다음부터가 더 힘들었고, 그런 게 싫어서 일본을 떠나 외국에서 고립된 채로 살았다”고 고백했다.
하루키는 대(對)세계와의 관계맺기가 문인의 조건임을 강조한다. 그는 “자신이 눈여겨본 대상과 전면적인 관계를 맺어나갈 것, 그런 관계 맺음의 깊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작가적 삶의 필요조건을 설명한다. 응당 문학세계의 이야기로 들릴 법한 이야기이지만, 삶의 태도를 어떻게 가질지 일러주는 문장이다.
시바타 모토유키 전 동경대 영문과 교수는 하루키 책을 두고 “어떻게 살아갈야 할지를 모색하는 사람에게 종합적인 힌트와 격려를 건네준다”며 “무엇보다도 ‘굳이 이대로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하고픈 대로 하는 게 가장 좋아요’라는 암시를 통해서”라고 평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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