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미술품 경매 양대산맥인 서울옥션과 K옥션이 올해 부쩍 덩치를 키우고 있어 눈길을 끈다. 홍콩을 넘어 세계 미술의 심장부인 뉴욕으로 영토 확장을 시도하는가 하면 온라인과 고미술 전문 자회사 법인을 잇따라 세우며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K옥션은 27일 “뉴욕에서 5월 6일부터 8일까지 김환기를 비롯한 한국 단색화가 14명의 초기 작품을 중심으로 한 추상회화 전시를 연다”고 밝혔다. 시장 선호도가 가장 높은 1960~80년대 작품을 주축으로 한 총 40여점으로 보험가액만 수백억원에 달하는 액수다. 더구나 국내 경매사가 뉴욕에서 전시를 여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관심을 끈다.
이상규 K옥션 대표는 “단색화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뜨거운데다 작년 최대 실적을 기록한 덕분에 지금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 주류로 진입하기 위한 최적기라 판단했다”며 “이 기간 뉴욕 프리즈 아트페어는 물론이고 크리스티와 소더비 필립스 등 대형 경매회사 주요 경매도 열려 전세계 컬렉터들이 뉴욕으로 몰린다. 새로운 컬렉터를 발굴하기 좋은 시기”라고 설명했다.
하루 전인 26일 서울옥션은 온라인 시장 사업 진출을 위한 법인 ‘서울옥션블루’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이 첫 사업으로 무료 모바일 앱 ‘price it’시범 운행을 시작했고 하반기에는 모바일 경매도 선을 보인다고 밝혔다. 모바일 앱은 작가별 시세를 예측해주는 서비스다. 온라인 경매 법인에서는 미술품 뿐만 아니라 보석과 시계 와인, 생활용품 등 다양한 품목을 다룰 계획이라고 했다. 서울옥션블루는 이호재 서울옥션 회장의 차남인 이정봉 대표가 이끈다. 앞서 K옥션 역시 온라인·고미술 전문 ‘옥션온’ 법인을 설립하고 고서화 전문가인 김영복 전 단옥션 대표를 영입했다. 시대의 큰 변화인 SNS 모바일 환경에 대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경매 회사들이 공격적인 몸집 불리기에 나선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지난해 최대 실적으로 실탄을 장착해 재투자 여력이 생겼고, 미래를 위해 국내 시장을 넘어서야 한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30대 말부터 40대에 접어든 화랑가 2세들이 경영 전선에 본격 뛰어들고 있는 점도 국내 미술판 세대교체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지난해 낙찰총액 기준에서 최대 실적을 기록한 서울옥션과 K옥션의 2015년 당기순이익은 각각 73억원과 42억원이었다. 2015년 31억원과 15억원에서 껑충 뛴 액수다. 이옥경 서울옥션 대표는 “국내 시장으로는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국내 작가들의 해외 인지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해외를 적극 공략해서 국내 미술판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밝혔다.
1998년 서울옥션 설립을 시작으로 포문을 연 국내 미술품 경매 역사는 20년을 앞두고 있다. K옥션은 2005년 설립됐으며 서울옥션은 2008년 홍콩에 첫 진출했다. 서울옥션은 진출 초기 적자를 기록하며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2014년과 2015년 큰 결실을 기록하며 해외 시장에 자신감과 확신을 갖게 됐다는 관측이다. K옥션 역시 지난해 홍콩 경매 횟수와 규모를 늘리며 공격적으로 나섰다. 특히 크리스티와 소더비 등 굴지의 해외 경매회사들이 한국 시장을 넘보는 상황에 이르자 국내 경매회사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 확보에 나섰다는 관측이다.
지난 15일 크리스티뉴욕에서는 한국 고미술 경매가 열려 총 27점 가운데 25점이 낙찰됐다. 낙찰총액만 42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조선불화는 추정가의 45배에 이르는 180만달러(20억원)에 팔려 화제가 됐다. 크리스티뉴욕에서 한국 고미술 경매가 열린 것은 2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서진수 강남대 교수는 “일본과 중국에 비해 한국 고미술 시장이 저평가됐고, 단색화가 유럽과 미국에서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며 “국내 미술품 경매 산업이 제2라운드에 돌입했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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