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또 나는 어디서 왔나라는 질문에서 모든 게 시작됐죠.”
손열음(30)은 사색적인 피아니스트다. 그는 평소 치열하게 책을 읽고, 글을 쓴다. 텍스트에서 얻은 통찰은 곡에 대한 그만의 톡톡 튀는 해석으로 이어지고, 이는 타고난 천재적 테크닉, 음악성과 만나 찬란한 빛을 발한다.
5년 전 차이콥스키 국제 피아노콩쿠르에서 준우승하며 스타로 떠오른 그다. 이번에 ‘모던 타임스’라는 제목의 새 앨범과 동명의 리사이틀로 3년 만에 돌아온 그는 여전히 이 시대의 젊은 ‘르네상스맨’과 같은 인상이었다. 리사이틀을 열흘 앞둔 17일 그는 이태원 스트라디움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20세기 초반, 즉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무렵 작품들을 중심으로 공연을 구성한 이유에 대해 그는 “동경이 있었다”고 답했다.
“전 이 시대에 대해 굉장히 큰 동경을 갖고 있어요. 한국인으로서 저의 정체성과 깊은 연관이 있기도 하죠.” 일평생 ‘서양음악을 하는 동양인’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에서 늘 따라다닌 질문에 본격적으로 답해보고 싶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우리가 서양의 음악을 듣고, 서양의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1910년대예요. 유럽이나 한국이나 이 시기를 기점으로 엄청난 세계화가 진행됐고, 패러다임이 바뀌었죠. 음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특히 한국인인 동시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서양 음악을 연주하는 ‘코스모폴리탄’적인 아티스트로서 이 시대 음악과 작곡가들에게 특별한 공감을 느꼈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집중적으로 탐구한 대상은 이 시기를 화려하게 수놓은 러시아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이다. “스트라빈스키와 라벨은 가장 선진적인 코스모폴리탄이었어요. 여러 나라의 문화적 영향이 배어있죠. 이번 공연을 앞두고 이 둘을 정말 심각하게 좋아하게 됐어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가 꼽는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라벨의 피아노곡 ‘쿠프랭의 무덤’과 스트라빈스키의 발레곡 ‘페트루슈카’다. 라벨이 1차 대전 참전 후 전사한 동료들을 기리며 쓴 ‘쿠프랭의 무덤’은 손열음이 20세기 초반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는 “2014년 1차대전 10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에서 이 곡을 연주해달라는 요청이 왔어요. 라벨의 음악은 전쟁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존재라 더욱 흥미를 갖게 됐죠.” 그가 이날 기자들 앞에서 선보인 ‘페트루슈카’ 2악장은 곡 특유의 기괴하고 강렬한 선율이 날카로운 해석과 어우러져 거대한 아우라를 뽐냈다.
에세이집을 내기도 했던 손열음은 “글쓰기는 제게 고행이예요. 하지만 성취감이 무엇보다 크죠. 클래식 음악의 추상적 부분을 보다 상세히 풀어낼 수 있는 점도 매력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으로 독일 문호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를 꼽았다. “주인공 역시 음악가예요. 그의 고뇌를 예술로 승화시킨 부분이 정말 인상 깊었죠.” 이번 앨범과 공연을 준비하며 몰두한 책은 독일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다.
공연은 오는 2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577-5266
[오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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