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 씨(52)는 무명 트로트 가수였다. 석달 전,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지난 25년을 그렇게 살았다. 반전은 한 네티즌이 인터넷에 올린 작은 이미지 파일에서 비롯됐다. “~전해라”며 열창하는 이 씨 모습 사진이다. 사람들은 그 이미지에 재치 있는 문구를 담아 의사 표시를 했다. 그게 유행이 됐다. 이미지 주인공 이애란 씨는 순식간에 유명 가수가 됐다. 이 씨는 “처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진 이미지를 봤을 때는 찡그린 모습만 나와 속상했는데, 오히려 친근했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 것 같다”면서 “인터넷 사진 한장으로 인생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를 ‘짤방’이 낳은 스타라고 부른다.
짤방은 ‘짤림(잘림) 방지’를 줄여 부르는 말이다. 기존 콘텐츠를 재가공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유통시키기 편하도록 만든 2차 콘텐츠를 뜻하는 신조어다. 더 줄여 ‘짤’이라고도 한다. 2000년대 초반 한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미지를 첨부하지 않은 글은 삭제(잘림)하는 규칙이 있었는데, 그게 짤방의 시작이었다. 게시판 이용자들은 자신이 쓴 글이 삭제되지 않도록 글 뒤에 재미있는 그림이나 사진을 첨부했다. 그리고 짤림 방지’라고 불렀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짤방은 진화했다.
요즘은 온라인 게시판, 모바일 메신저 대화창 등에서 이모티콘 대신 애용되고 있다. 이모티콘이 기존 상업적 캐릭터를 활용해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라면 짤방은 텍스트까지 첨부할 수 있는 게 차이점이다. 적재적소에 문자 대신 활용할 수 있는 짤방을 위해 일부러 짤방만 수집하는 마니아들도 생겼다.
이러한 열풍을 반영해 포털과 SNS 업체들도 ‘짤방’ 관련 서비스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해 9월 자신이 가진 짤방을 뽐내는 ‘짤 페스티벌’을 진행해 주목을 받았다. 최근에는 웹툰 애플리케이션(앱) 안에 ‘겟!짤’이라는 코너도 오픈했다. 웹툰 장면을 이용해 만든 ‘짤’을 다른 독자들과도 함께 즐기고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다. 다른 사람의 ‘짤방’에 ‘좋아요’나 댓글을 달면서 즐기며 소통할 수도 있다. 네이버 관계자 “현재 ‘겟!짤’엔 매일 1만 개가 넘는 콘텐츠가 올라오고 있다”며 “짤방 열풍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카카오도 최근 짤방을 활용한 이모티콘을 속속 내놓고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한 짤방형 이모티콘은 이애란 씨 ‘전해라~’ 짤방을 포함해 10여건이 제작·판매되고 있다.
짤방만을 다루는 스타트업도 등장했다. 스토리허브가 만든 ‘짤로그’는 짤로 대표되는 2차 콘텐트산업 분야 애플리케이션이다. 자신이 제작한 짤을 구매하거나 판매할 수 있는 마켓이다. 지난해 말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한 달만에 누적 저작권 정산액이 1억원을 돌파했다. 짤로그 저작권 등록자는 1000여 명, 이들이 만든 짤방 상품 거래 건수도 2만 건이 넘었다.
노명우 아주대 교수(사회학)는 이같은 ‘짤방 열풍’를 소비자가 주체적으로 생산에 참여하는 프로슈머 문화로 정의했다. 그는 “미디어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수용했던 대중들이 이제는 ‘짤’이라는 형태로 2차 콘텐츠를 탄생시켰다”며 “단순한 재소비를 넘어 짤방 스타 이애란 씨처럼 1차 콘텐츠를 역으로 견인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노 교수는 “정치인이나 연예인을 캡쳐해 위트있게 재가공한 짤방이 많다”며 “현대인의 특성 중 하나로 꼽히는 ‘호모루덴스’ 즉, 놀이형 인간 모습”라고 말했다.
[이선희 기자 / 오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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