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함정임(51)에겐 길 위의 작가라는 말이 어울린다. 스스로 ‘노마드’임을 자처하는 작가가 5년만에 묶은 8번째 소설집 ‘저녁식사가 끝난 뒤’(문학동네)의 인물들은 자신의 삶의 궤적만큼이나 다채로운 시공간을 공유한다. 1960년대 부산 뒷골목, 2000년대 부산과 서울 시내, 경주의 산사, LA, 뉴욕의 맨해튼, 프랑스 남,부 지구반대편 멕시코까지. 이들을 통해 작가는 떠도는 자들은 머물러 있는 자들보다 좀더 부단하게 세계와의 만남을 경험하게 되고, 그 세계의 중심에 ‘상실’이 놓여있다는 삶의 진실을 알려준다.
표제작 ‘저녁식사가 끝난 뒤’는 한 부부의 저녁식사를 조용하게 비춘다. 프랑스 영화를 보다 작고한 P선생의 기억이 떠올라 지인들을 초대한 것이다. 식사준비를 하며 순남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은촛대를 꺼내는 일. 지난번에 은촛대에 불을 붙인 건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저널리스트 잠바와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온 가수 자야와의 식사였다. 자야의 노래는 마음을 잡아끄는 영적인 소리였다. 노래가 끝나자 순남씨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렸다. 우랄알타이어로 읊조리는 내용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그녀는 가수라기보다는 샤먼으로 다가왔다.
순남에게는 아픈 기억이 있다. 이란성쌍생아로 태어난 아이들 중 딸은 한달만에 폐렴으로 숨을 거뒀다. 아들는 무럭무럭 잘 자랐으나 성장해 품을 떠나자 오랜 지병이 도지듯 마음은 다시 산란해졌다. 제자인 효주가 요즘 자신의 마음을 채워주고 있었다. 편부슬하에서 자랐고 대인기피증이 있는 효주는 자신에게만은 입속의 혀처럼 다정했다. 딸아이가 살았더라면, 아마 효주 학생 나이였을텐데.
오늘의 저녁식사엔 P선생과의 인연으로 부부가 된 세 커플이 도란도란 모였다. P선생을 떠올리며 각자 소중한 기억의 징표를 가지고 식탁에 둘러앉는다. 각자 마련해온 음식과 노래와 시가 빚어내는 따뜻한 삶의 풍경 속에 살아남은 자의 비애나 상실감은 끼어들지 못한다. 소설은 고리처럼 이어지는 상실의 빈자리를 묘사한다. 하지만 아무말없이 고인을 추억하는 것만으로 부재는 뚜렷한 현전으로 뒤바뀌고 만다. 애도의 신비다.
이소연 문학평론가는 “함정임의 소설은 부재에 기대어 오랜 시간을 견뎌온 이들의 몫에 대해 말한다. 내 상처가 그들의 것과 만날 때 느끼는 기쁨, 소설은 또한 그 찰나를 위해 마련된 사건이 아니겠는가”라고 읽어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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