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친절하지 않다. 번역은 웃지 않는다. 번역은 피를 흘릴 뿐이며, 그런 의미에서 번역은 나를 걸고 임하는 사랑이지, 일방적으로 베푸는 자애나 동정이 아니다.”
이토록 단호한 ‘번역론’이라니. 문학평론가 조재룡 고려대 불문과 교수(48)의 ‘번역하는 문장들’(문학과지성사) 머리말에 실린 글이다. 그는 활발한 현대시 비평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알랭 바디우의 ‘사랑예찬’, 조르주 페렉의 ‘잠자는 남자’ 등을 옮긴 부지런한 번역가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그는 번역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에 대해 대답하고, 번역의 문학적 가치를 옹호한다.
그에게 번역은 창조적 행위이자, 강력한 독서의 행위다. 번역은 수동적이고 기계적인 작업이며, 외국어에 능통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한 작업이라는 의견을 그는 반박한다. “우리가 흔히 ‘문학성’이라고 부르는 것이야말로 번역에서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할, 번역의 핵심이자 사안, 번역가의 과제나 다름없다”면서 “나는 번역이아말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삼분하여 소개한 인간의 지적 활동을 총체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이며, 이러한 능력을 갖춘 상태에서 하루하루 밀고 나가는, 매우 힘겹고도 독창적인 글쓰기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한다. “번역이 창작이고, 번역이 비평”이라는 말이다.
2000년대 이전까지 정밀한 번역이 이뤄지지 않고 짜깁기기 횡행했던 국내의 세계문학전집 번역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한다. “짜깁기 지침서로 쓸 수 있게 만들어진 시”라는 노골적인 조롱까지 하면서. ‘의역이나 직역이냐’라는 번역을 둘러싼 그치지 않는 논쟁에 대해서도 그는 양쪽의 손을 모두 들어주지 않는다. “번역은 결국 원문이 머금고 있는 최대치의 주관성을 내 문장의 최대치의 주관성으로 담아내는 작업”이라는게 그의 대답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주목한 주제는 ‘번역의 윤리’다. “번역의 윤리가 중요한 것은 이 방대한 활동성과 언어활동의 위험성에 항시 노출된 활동이 바로 번역이기 때문이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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