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울 대학로 쁘띠첼씨어터에서 열린 창작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 공연(5월 31일까지). 두 배우의 치열한 기싸움이 300석 규모 소극장 공기를 팽팽하게 당겼다. 천재 물리학자 프로페서V(배우 송용진)와 드라큐라 백작(고영빈)의 한 치 양보없는 대립이 극을 날카롭게 밀고나갔다.
처음부터 두 사람은 대척점에 서 있었다. 프로페서V는 뛰어난 두뇌를 가졌지만 여자들에게 외면당한다. 반면 드라큐라 백작은 모든 여인의 마음을 가질 수 있지만 생명까지 빼앗아버리는 저주를 받았다.
프로페서V가 타임머신을 타고 떠난 시간 여행에서 드라큐라 백작을 만나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프로페서V는 남자의 매력을 얻는 대신 보름달이 뜨면 누군가의 피를 마셔야 하는 삶을 선택한다. 하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짝사랑하던 여인까지 죽인 그의 절규가 터지면서 극은 정점을 찍는다. 늘 조정당하다가 반기를 든 프로페서V와 드라큐라 백작의 갈등에 관객들이 숨을 죽였다.
치밀한 구성과 극도의 긴장감, 중독성 강한 음악, 독특한 소재, 두 배우의 연기력과 가창력. 이 요소들이 고밀도로 응집된 덕분에 객석이 열광했다.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이 인사를 하는 순간에 카메라 셔터가 일제히 터졌다. 대부분 두 배우의 열성팬들이다.
2인극의 가장 큰 미덕은 공연 내내 좋아하는 배우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오직 두 배우가 끌고 가는 극이기 때문에 등퇴장이 거의 없다. 배우와 관객의 친밀한 소통도 장점이다. 소극장에서는 무대 위 배우의 숨소리까지들린다. 스토리 전개가 느슨해질 무렵에는 배우가 객석에 내려와 말을 걸기도 한다.
무대와 객석 거리를 좁히고 배우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키는 2인극이 대세다. 매진 행진을 기록한 후 최근 막을 내린 스테디셀러 뮤지컬 ‘쓰릴 미’ 뒤를 이어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가 관객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지난달 10일 티켓을 오픈한 후 3월 한 달 공연 좌석이 거의 팔렸다.
두 배우의 균형이 깨지면 극의 밀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실력과 인기를 겸비한 배우들이 출연한다. 프로페서V 역할에 송용진·허규·김호영·서경수, 드라큐라 백작 역할에 고영빈·박영수·이동하·이충주가 캐스팅됐다.
여성 관객 비중이 높은 국내 뮤지컬계에는 남성2인극이 압도적이다. ‘쓰릴 미’ 와 ‘마마, 돈 크라이’ 외에도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트레이스 유’ ‘구텐버그’가 무대에 펼쳐졌다.
오직 두 배우의 호흡에 의존해 공연을 끌어가기 때문에 흡인력이 강하고 자극적인 소재를 앞세운다. ‘스릴 미’는 동성애에 빠진 두 남자가 어린이를 유괴해 살해하는 사건을 다뤘다.
비교적 적은 제작비(20~30억원)에 실험적인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것도 2인극의 장점이다. 대극장 뮤지컬보다 흥행 실패 부담이 덜한 상태에서 과감한 스토리와 음악을 선보일 수 있다. ‘마마, 돈 크라이’ 는 비트 강한 록 음악으로 승부수를 던졌고, ‘스릴 미’는 피아노 반주만으로 자극적인 노랫말을 떠받쳤다.
원종원 뮤지컬 평론가는 “그동안 2인극에서 다양한 예술 형식과 음악이 시도되어 왔다. 연극 출신 연출가와 작가가 많은 국내 뮤지컬계에서는 심도 높은 이야기에 몰입과 반전 등 연극적 재미를 주는 작품들이 많이 공연됐다”고 설명했다.
열악한 제작 여건에서 공연하는 소극장 연극은 2인극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공연한 연극 ‘리타’ ‘숨비소리’ ‘형제의 밤’ ‘헤드락’ 등이 대표적이다. 새로운 형식을 발굴하는 ‘2인극 페스티벌’도 매년 열린다.
[전지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