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간된 계간지 ‘문학과사회’ 봄호에 반가운 소설이 실렸다. 연재를 시작하는 백민석(44)의 새 장편 ‘폭력의 세기’ 다. “부끄럽지만 저의 ‘목화밭 엽기전’이 나온지도 십오 년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공포의 세기’에서 폭력이 육체보다는 정신을 향하도록 했습니다.”
1990년대 한국 문단의 ‘뉴웨이브’를 이끌었던 문제작가 백민석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짜릿한 ‘출사표’가 아닐 수 없다. 10년전 절필했던 그는 2013년 11월 ‘혀끝의 남자’를 내며 돌아왔지만 이 소설집엔 신작이 2편 뿐이라 독자들의 오랜 갈증을 해갈하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신작은 ‘죽은 올빼미 농장’이후 무려 12년만의 장편인데다 그의 전매특허인 폭력을 소재로 삼았다. 당대의 청춘 독자들이 열광했던 ‘전위의 아이콘’이 당당히 돌아온 것이다.
문단에 90년대 풍미했던 작가들이 속속 귀환하고 있다. 백민석을 비롯해 10여년간 작품활동을 쉬었던 심상대(55)와 고은주(48)도 소설가로의 복귀를 선언했다. 심상대는 1월 장편 ‘바쁜 봄’(문학과지성사)를 펴냈고, 고은주는 문학사상에 1월호부터 장편 ‘드라마 퀸’ 연재를 시작했다.
심상대(1990년), 백민석(1995년), 고은주(1995년)은 모두 90년대에 등단해 문단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온 작가들이다. 화려하게 등장했던 젊은 작가들이 기약없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이들의 절필은 큰 아쉬움을 남겼다.
이들이 문단을 떠난 건 여러가지 이유에서였다. 백민석은 복귀작을 내며 절필의 이유를 우울증 때문이었다고 밝힌바 있다. 소설과 동떨어진 직장생활을 하며 10년을 보낸 그는 공백의 시간을 통해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을 되찾았다. ‘혀끝의 남자’를 내며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대표작이 없는 것 같아서 지금 쓰는 장편을 대표작으로 만들려고 노력 중”이라는 말을 보탰다. 그렇게 다시 천착하게 된 주제는 폭력과 종교다.
심상대는 현대문학상 등을 연거푸 수상하며 6권의 순문학 소설집을 내놓은뒤 문단을 떠났다. 10여년의 공백기간동안 그는 정동영 의원 등의 보좌활동을 하며 정치권에서 활동했다. 방황끝에 돌아온 작가는 서울에 집필실을 얻어 하루를 온전히 창작에만 바치고 있다고 한다. 복귀작으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을 배경으로한 환타지 소설 ‘나쁜 봄’을 내놓았다. 순문학작가들이 쉽게 선택하지 않는 포털 사이트의 웹소설로 연재하는 파격을 선택하기도 했던 그는 절판된 책 14권을 다시 온라인으로 공개할 작정이다. 내년까지 장편과 소설집 5권을 연이어 내놓겠다는 포부로 작업실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다.
전직 아나운서 출신 작가 고은주는 14년 전 출간된 ‘여자의 계절’에서 사랑과 성풍속도에 관한 대담하고 파격적인 묘사로 문단의 주목받았다. 신작 연재를 시작하며 그는 “여성들의 다양한 삶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자의 계절’과 맞닿아 있다”면서도 “성에 관한 고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냈던 전작과 달리 좀 더 폭넓게 삶 전체를 조망하는 모습을 그려내려고 한다”고 문학사상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지난 10년 동안, 늦둥이 출산과 육아를 하며 생활인으로서의 삶에 충실했다고 한다. 침묵을 깬 계기는 자신의 등단지인 문학사상의 원고청탁 전화였다. 그는 “막내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등단했던 박완서 소설가처럼 올해 막내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초심으로 돌아가 소설을 쓰려고 한다”고 밝혔다.
왕성한 필력과 문재(文才)를 자랑했던 이들이 성실한 전업 작가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독자들도 반갑다. 어느덧 등단 20년차를 출쩍 넘긴 중견이 된 이들이 신인 작가 못지 않은 활력을 문단에 불어넣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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