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426년이 지난 후 임진전쟁(왜란)이 터지고 5일 후에 전쟁의 소식을 알았다고 위대한 역사서인 징비록(懲毖錄)에서 만이 기록하여 놓았다.
제가 국립안동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강의를 할려고 했으나 인원 미달로 강의를 못하였습니다. 여기에는 국가에서 운영하고 있는 제도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왜 임진전쟁(왜란)이 5일만에 알게되었나에 대해 질문이 들어와서 그 전에 안동과학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강의한 것을 간단하게 올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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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임진년 1592년 4월 13일 전쟁이 터지고 17일 한양 조정에 접수가 되었다고 류성룡선생님의 위대한 역사서인 징비록(懲毖錄)에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제가 강의 때 말하기를 그 당시 나라가 썩어문드려졌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다시말해 전쟁이 일어나면 산꼭대기에 설치한 봉수대(烽燧臺)가 있는데 그 당시 한군데도 작동이 않되었다는 것입니다.
봉수대가 낮에는 연기로 하고 밤에는 불빛으로 하여 비상통신망으로 알렸는데 그리고 전쟁에는 봉수대가 5개가 설치되어있는데 5개를 다 사용하여 알렸습니다.
그런데 봉수대는 작동이 않되었다는 말입니다. 그 당시 전국에 약 600개소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다 이야기를 못하옵고
좌우간에 그 당시는 나라가 아니라 어떠한 변명도 필요 없으며 그 당시 임금과 중신들의 집안은 자중하지 않는다면 그때 당한 인명과 주요한 문화재 등에 대해 피해보상을 받아내야 하며 역사의 중죄를 물어야한다고 봅니다.
즉 임진전쟁(왜란)이 터지고 5일만에 알았다는 역사를 알고 이러한 기가막히는 사연을 알고 이제는 대책과 방책을 세워나가는 지혜를 찾아봅시다.
▣ 임진전쟁(왜란) 당시 주위 정세 즉 배경
역사의 위대함은 즉 진정한 지혜를 우리에게 주는 것은 주요한 사건에 대해 그 당시의 배경, 정세를 아는데 있다.
이 당시 임진전쟁(임진왜란)을 감당할 수 없는 국력의 쇠약함에 대해 전후의 역사적의 배경이나 정세의 상황을 보면
정치적으로 조선 10대 연산군시대에 무오사화, 갑자사화와 이후 11대 중종시대에 기묘사화 13대 명종시대에 을사사화 등이 일어나게 되어 훈구(勳舊)와 사림(士林)간의 세력의 정쟁(政爭)으로 인한 중앙정계의 혼란과 사림세력이 득세한 선조즉위 이후 격화된 당쟁 등으로 정치의 정상적인 운영을 수행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렸고 군사적으로도 붕괴되어 발휘하지 못하고 더구나 외구와 청나라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해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十萬養兵說)을 주장하였으나 국가재정의 허약의 핑계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회는 점점 해이해지고 문약에 빠져 근본적인 국가방책이 확립되지 못한 실정에 놓여 있었다.
➜ 율곡 이이(李珥)는 1583년(선조 16년) 2월에 48세로 병조판서에 임명되어 선조에게 시무육조(時務六條) 즉 십만양병설(十萬養兵說)를 올렸다. ≪ 이이와 풍신수길은 나이가 동갑임. ≫
이때 풍신수길(도요토미히데요시) 48세로 일본의 전국을 장악하여 4년 뒤에 전국을 통일하였다.
풍신수길(1536~1598.8.18.)은 일본을 이미 이전에 포르투갈 사람들로부터 총과 포술을 들여다가 신무기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또한 이때에 45세의 누르하치(청태조: 1559~1626.9.30.)는 이미 거병하여 요동지방을 석권함으로써 옛날 금나라의 영토를 확보해가고 있었다.
➜ 이 당시에 이이(李珥)의 시무육조(時務六條)를 올린 후 십만양병설(十萬養兵說)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임진전쟁(임진왜란)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게 된 것은 전적으로 임금과 중신한테 책임이 있다.
왜냐 고려 8대 현종시대의 강감찬(姜邯贊)은 거란(요)침략을 예상하고 20만 군대를 조성하여 귀주대첩(龜州大捷)을 1019년 2월 초하루에 승리로 이끌어 즉 거란(요)의 3차 침입을 물리쳐 나라를 구하였다.
즉 고려시대에 귀주대첩이 일어나고 573년이 지난 후 조선시대에 십만의 군사력을 키우지 못하고 임진전쟁(임진왜란)이 일어나 일본에게 조선의 나라가 참혹함을 당하였다.
즉 십만양병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책임은 그 당시 임금과 중신들에게 있다 곧 그들의 집안에서 자중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영구히 역사의 대범죄를 물어야 한다.
비록 명나라의 도움과 여러 의사(義士) 의민(義民) 의승(義僧: 승병)들의 희생으로 임진전쟁을 물리쳐 끝이 났지만 선량한 백성들에게 온갖 참혹함을 당하게 한 것에 대하여 십만양병설인 군사 10만명을 양성 못하였는 책임은 영구히 역사의 대범죄를 물어야 한다.
한마디만 더 말하고자 합니다.
임진전쟁이 터지고 봉수대가 작동이 않되어 5일만에 전쟁의 소식을 알았다. 그 당시는 나라가 썩어문드려졌으나 그러나 그 후 모든 백성과 호국불교인 종교인들은 전쟁에 참여하여 선량한 백성과 나라를 구하였다.
그런데 지금의 문재인정부는 기가 더 막히고 교활한 괴략에 다 넘어갔다. 그 당시 대선 때 공약으로 종교와 양심을 핑계로 하는 병역거부자 들에게 표를 얻기 위해 병역거부자들을 옹호하게 하였다.
곧 현재 나라는 대통령을 잘못 뽑아주게 되어 결국 문재인이 임명한 헌법재판소장부터 나라의 존망에서 존립이 더 중요한데 한 개인의 종교와 양심이라는 괴상한 문구에 나라 전체는 생각않하고 병역거부의 길을 열어주게 되어 그 후 대법원장도 결국 병역거부를 인정하게 해주는 괴상한 판결을 하기에 이르렀다.
곧 나라의 보류인 병역문제를 적이 쳐들어와 선량한 백성과 내부모형제를 다 죽이는 데도 적을 물리칠 생각은 않하고 구경만 하겠다는 이러한 젊은 병역거부자들을 능지처참은 않하고 곧 올바르게 처리는 않하고 풀어준단 말인가.
이러한 나라는 임진전쟁 때 5일 후에 알게된 것보다 현재는 더 나라가 썩어문드려졌다고 봅니다.
아아 문재인의 대선공약의 괴략에 다 넘어가게 되어 앞으로의 일들이 걱정이며 앞으로 나라의 혼란을 과연 어떻게 막을 것인지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아아 걱정이로다.
문재인정부를 비롯하여 헌법재판소장과 대법원장과 현재여당대표 등을 능지처참하여야 하는 일이 남아있다. 곧 나라의 존망이 더 중요함을 모르고 일개 개인의 종교와 양심을 생각하고 있는 좁아빠진자들을 능지처참해야 하는 일이 남아있다.
여러분의 지혜를 방책을 기대합니다.
몇일 남지않은 날을 잘 마무리하시고
새해에는 향기로운 한해가 되시기를 바라옵니다.
추운날씨에 몸 건강하세요.
홍익방건축(弘益房建築) 특허사업 대표이며 천지인방연구소(天地人龐硏究所) 소장
무술년(戊戌年) 서기 2018.12.24. 월요일. 호(號) 심조불산(心操彿山) 용사(庸辭)
➜ 나머지 자료와 참고문헌은 제 블로그(자료실 또는 홍보실) 첫 글인 천지인(天地人)방 http://blog.naver.com/hhs0203 에 올려놓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