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동양인 배우를 ‘패싱’하는 장면이 두 차례나 포착되자 인종차별이라는 지적이 잇달아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돌비 극장에서 제96회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이날 조·주연상 시상은 기존과는 달리 전년도 수상자와 역대 해당 부문 수상자 배우 4명이 함께 무대에 올라 후보자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남우조연상 시상은 전년도 수상자인 키 호이 콴이 맡았습니다. 그는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루이스 스트로스 역을 맡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호명했습니다. 이는 다우니의 생애 첫 오스카 수상이었습니다.
문제의 장면은 다우니가 수상하러 무대에 오른 직후 나왔습니다. 키 호이 콴은 트로피를 전달하기 위해 환하게 웃으며 다우니에게 다가갔는데, 이때 다우니는 키 호이 콴의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트로피만 받아 갔습니다. 이후 다른 백인 배우 두 명과는 악수를 나누거나 주먹을 치며 인사했습니다.
키 호이 콴은 다우니의 팔을 살짝 만지는가 하면 인사하기 위해 재차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다우니는 곧바로 마이크 앞에 서 소감을 말했습니다.
제96회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 여우주연상 엠마 스톤 시상 장면. / 사진=유튜브 ‘ITV’
여우주연상 시상 때도 비슷한 장면이 포착됐습니다. 전년도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양자경(양쯔충)이 다른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영화 ‘가여운 것들’의 엠마 스톤을 수상자로 호명했습니다.
무대에 오른 스톤은 양자경 손에 있는 트로피를 향해 걸어가 잡는 듯하더니 옆에 있던 제니퍼 로렌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러자 로렌스가 양자경에게 있던 트로피를 잡아 스톤의 품에 안겨줬습니다. 양자경이 아닌 로렌스가 트로피를 수여하는 모양새가 연출된 것입니다.
배우 샐리 필드가 로렌스의 이런 행동을 제지하는 듯한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습니다. 스톤은 수상소감 직전에서야 양자경에게 손을 뻗어 짧은 인사를 건넸습니다.
지난해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오스카상을 받은 키 호이 콴과 양자경은 각각 베트남, 말레이시아 출신 배우입니다. 동양인 시상자를 패싱하는 듯한 모습이 두 번이나 나오자 국내외에서는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다만 다우니가 수상소감 후 무대를 내려오면서 키 호이 콴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양자경과 스톤이 포옹하는 모습이 포착되자 이들을 옹호하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또 스톤이 무대에 올랐을 때 드레스 뒤쪽이 튿어지는 사고 때문에 경황이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논란이 일자 양자경은 소셜미디어(SNS)에 스톤과 포옹하는 모습, 로렌스와 함께 스톤에게 트로피를 넘겨주는 모습 등이 담긴 사진을 게재하며 직접 진화에 나섰습니다. 그는 “축하해 엠마! 당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지만, 당신의 절친 제니퍼와 함께 오스카를 당신에게 넘겨주는 영광스러운 순간을 공유하고 싶었다”고 적었습니다.
[박혜민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floshml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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