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의 아들'이 필리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됐다.
ABS-CBS 방송 등 현지 언론은 10일 오전 5시10분 현재 개표율 94.4%가 진행된 상황에서 대선후보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상원의원이 3006만여표를 얻어 경쟁자인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1433만표)을 크게 앞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두 후보의 득표 격차가 2배 이상 벌어지면서 사실상 마르코스의 당선이 확정된 것이다. 이에 따라 독재자 가문이 36년만에 권력을 다시 잡게 됐다.
마르코스 후보는 독재자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로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1965년부터 1986년까지 21년간을 집권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정권을 잡은 뒤 7년이 지난 1972년부터 1981년까지 계엄령을 선포해 수천명의 반대파를 체포해 고문하고 살해하면서 국제사회에서 집중적인 비난의 대상이 됐다.
이 때문에 1986년 폭발한 시민들의 항거로 결국 하야와 함께 하와이로 망명했다.
1990년 아들 마르코스는 필리핀으로 다시 돌아와 집안의 정치적 고향 북부 일로코스노르테주에서 주지사와 상원의원에 선출됐다. 또 지난 2016년에는 부통령 선거에 나왔다가 이번에 경쟁상대가 된 로브레도 현 부통령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하기도 했다.
마르코스는 현지 조사기관인 펄스 아시아가 지난달 16∼21일 2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56%의 지지율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면서 당선이 유력시됐다.
필리핀국립대 정치학부 교수인 하이메 나발은 "마르코스를 지지하는 30대 이하의 젊은층은 그의 선친 치하에서 부패와 인권탄압을 겪지 않았다"면서 "따라서 이들은 과거의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할 뿐 아니라 미화되고 왜곡된 이야기에 노출돼왔다"고 말했다.
부통령에는 마르코스와 러닝메이트를 이룬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딸 사라 다바오 시장이 사실상 당선됐다.
다바오 시장은 3036만표를 얻어 경쟁자 프란시스 팡길리난 상원의원(892만여표)를 3배 이상 앞서고 있다.
한편 필리핀은 대통령과 부통령 외에도 상원의원 13명, 하원의원 300명을 비롯해 1만8000명의 지방 정부 공직자를 선출하는 선거를 함께 치렀다.
[이상규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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