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리틀 버핏'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월가 투자 거물 빌 애크먼(54) 퍼싱스퀘어캐피털 회장이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 사태를 '9·11테러'에 비유하며 앞으로 뉴욕증시가 두 달 정도 큰 부침을 겪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틀 전 소프트뱅크의 손마사요시(손정의·63) 회장과 비슷한 입장이어서 시장 눈길을 끌고 있다. 애크먼 회장은 자신이 존경해온 '가치 투자 대가' 워런 버핏(90) 회장의 버크셔해서웨이 투자 방식이 시대에 걸맞지 않을 수 있다고도 언급해 투자자들이 주목했다.
19일(현지시간)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애크먼 회장은 이날 투자 고객을 상대로 연 '퍼싱스퀘어 3분기(7~9월) 실적 발표' 자리에서 "우리가 보기에는 매일 매일이 2001년 9·11테러 때 같다"면서 "내년 증시는 낙관적으로 보지만 적어도 올해 말까지는 상황이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올해 남은 두 달이 매우 힘들고 비극적으로 흘러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같은 날 국제통화기금(IMF)이 '글로벌 경제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재확산 탓에 가계와 기업 제한이 생겼고 지난 6월 시작된 세계 경제 회복이 이제 다시 위기를 맞았으며 회복 모멘텀을 잃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 것과 비슷한 분위기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도 이날 블로그에서 "경제 위기에서 반등한 나라도 있지만 코로나19 재확산은 이 반등이 얼마나 어렵고 불확실한지 보여준다"고 언급했다. 앞서 17일 열린 딜북 콘퍼런스에서 소프트뱅크의 손 회장도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단기적으로 지금 나는 비관주의자"라면서 "앞으로 두세 달 안에 어떤 재난이든 일어날 수 있으며 위기 때는 현금이 필요한 만큼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고 한 바 있다.
다만 애크먼 회장은 내년 이후로는 뉴욕증시를 비롯한 글로벌 시장 분위기가 좋을 것이라고 보면서 버핏 회장을 언급한 후 적극적인 투자 방식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투자에 대해 배우고 싶다면 워런 버핏이 쓴 책과 그가 한 인터뷰를 보면 된다"고 하면서도 "나는 버핏이 최고의 자산 배분 투자자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재능이 사업 관리에 전부 쓰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버핏 회장을 존경해온 애크먼 회장은 한때 투자 방식 등을 따라해 '리틀 버핏'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애크먼 회장의 발언은 투자자들이 지난 5월 퍼싱스퀘어가 버크셔 지분을 전부 매도하고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을 상장한 이유를 묻는 가운데 나왔다. 애크먼 회장은 "버크셔 지주회사에 대해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 회사는 이익을 올릴 많은 기회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다만 우리는 워런(버핏 회장)에게 자본을 투자했지만 전세계 버크셔 투자자들 중 우리가 가장 큰 돈을 잃었다"고 말했다. 버크셔가 수천억 달러를 굴리기 때문에 투자에 보수적인데 반대로 적극적 투자를 선호하는 애크먼 회장으로서는 많은 기회비용을 치룬 결과가 됐다는 얘기다.
버크셔는 지난 7일 공개된 3분기 수익보고서를 통해 90억달러(약 10조원) 어치 자사주를 사들였다고 밝혔는데 시장에서는 대규모 자사주 매입 이유가 부진한 주가를 떠받치려는 목적이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올해 3분기 버크셔는 55억 달러(약 6조17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는 데 그쳤다. 전년 대비 30% 이상 감소한 규모인데 철도와 보험 등 계열사 사업이 코로나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탓이다. 다만 버크셔가 현금성 자산을 주로 쌓아두고 대규모 투자에 나서지 않은 가운데 버크셔 B주 주가는 올해 1월 2일 이후 지난 19일 까지 총 0.50%오르는 데 그쳐 같은 기간 뉴욕증시 대표 주가지수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 상승률(9.95%)과 퍼싱스퀘어가 지난 17일 공개한 연간 수익률(57.0%)을 크게 밑돌았다.
애크먼 회장은 "차세대 리더십은 버핏 식 기업 인수 투자를 줄이고 투자 포트폴리오를 더 낙관적으로 가져가고 있는 느낌"이라면서 젊은 투자자들이 공세적인 투자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애크먼 회장은 중국발 코로나19 사태가 불거지자 지난 3월 기업의 부도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가격이 오르는 파생상품에 2700만 달러(약 331억원)를 투자해 총 26억 달러(약 3조원)를 벌어들인 후 다시 증시 회복에 베팅해 30%넘는 수익률을 내 시장 눈길을 끈 바 있다.
한편 애크먼 회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인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선임고문이 다음 대선 주자로 나설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예상했다. 지난 3일 미국 대선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대해 그는 "아마도 이방카가 다음 번 대선에 나올 수도 있는데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불복은 딸의 도전에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내 생각과는 다른 안 좋은 일을 하기는 했지만 사실은 좋은 것을 정말 많이 했다"면서 "법인세 감면 외에 미국으로 제조업을 되돌려오려는 노력들이 대표적이었다"고 긍적적으로 평가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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