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갈등 관계인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에 전면전 기운이 감돌고 있다.
옛 소련 국가였던 양국이 무력 충돌해 민간인과 군인 등 최소 23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BBC가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날 충돌한 현장은 양국 분쟁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이곳을 두고 1988년부터 갈등을 겪었다.
이번 충돌 원인을 두고 서로 상대방 탓을 하고 있다. 니콜 파쉬냔 아르메니아 총리는 "아제르바이잔군이 민간인 정착촌에 공격을 가했다"며 "아제르바이잔의 권위주의 정권이 다시 한번 아르메니아 국민에게 전쟁을 선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전면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며 "우리의 신성한 조국을 지킬 준비를 하라"고 강조했다. 반면 아제르바이잔 국방부는 아르메니아 측이 먼저 도발 행위를 벌였다고 주장했다.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도 "우리의 명분은 정의롭고 우리는 승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측의 전면전 우려에 국제사회는 자제를 촉구했다. 유럽연합(EU)과 프랑스·독일은 '즉시 휴전'을 촉구했다. 이란은 양측의 대화를 중재하고 나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파쉬냔 아르메니아 총리에게 적대행위 중단을 요구했다. 이와 달리 터키는 같은 튀르크계 국가인 아제르바이잔에 지원 의사를 밝혔다.
이곳 분쟁의 원인을 다른 각국 분쟁처럼 종교와 민족을 고려하지 않고 그어진 국경선에서 비롯됐다.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와 이슬람권인 아제르바이잔 사이에 위치한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아제르바이잔 영토에 속하지만 아르메니아가 실효지배중인 영토 분쟁 지역이다.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 물결이 주변 지역으로 번져가던 19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등이 속한 캅카스(코카서스) 지역이 옛 소련에 편입된 후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아르메니아공화국으로 귀속됐으나 이후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행정 편의주의에 따라 1924년 아제르바이잔 영토 내 자치지역으로 변경됐다. 20%에 불과한 나고르노-카라바흐의 무슬림 아제르바이잔인들이 약 80%에 달하는 기독교인 아르메니아인들을 통제하기 시작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1988년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가 아르메니아로의 귀속을 선언했고, 1989년에는 아르메니아가 이 지역을 병합하기로 결정했다.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은 1991년 '나고르노-카라바흐 독립공화국'을 선포했다. 하지만 아제르바이잔이 이를 승인하지 않으면서 양측 간에 무력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1992년 러시아군이 아제르바이잔에서 철수하자 아르메니아는 이 지역에서 대규모 군사 공격을 가했다. 1994년 휴전이 성립되기까지 약 3만명이 숨지고 1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유혈 사태는 1994년 5월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CIS·옛 소련권 국가 모임) 의원 총회의 중재로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에서 열린 협상에서 휴전이 성립되면서 일단 중단됐다. 그 이후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다. 아르메니아가 실효지배하게 됐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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