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19판데믹(COVID-19 대유행)으로 전세계가 피해를 입은 가운데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도 중국을 향해 '발원지 규명' 압박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대해 '코로나 관세' 부과 가능성을 연일 언급한데 이어 나온 반응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그간 코로나19와 관련해 미국 트럼프 대통령 뿐 아니라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영국의 도미니크 라브 외무부 장관 등이 중국의 신뢰성 문제를 지적해왔는데 이번에는 EU차원에서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중국이 '미군 유포설'로 발원지 논란을 일으킨 후 '코로나 외교'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판데믹 책임을 규명하라는 국제 사회 압박이 커지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은 지난 30일(현지시간) 미국 CNBC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바이러스 발원을 조사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며 이를 지지한다"면서 "중국은 조사 과정에 참여해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집행위원회는 EU의 행정부 역할을 하는 곳이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발원지 조사는 전세계 차원에서 중요한 작업"이라면서 "바이러스가 미래에 또 언제 다시 올 지 모르기 때문에 전세계가 지금보다 더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통계 등 차원에서 더 많은 '투명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말은 지난 달 20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중국에 대해 한 발언과 비슷하다. 당시 메르켈 독일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됐는지에 대해 투명해져야 한다"면서 "중국이 투명해져야 전세계가 이번 사태에 대해 배우게 되고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EU가 중국을 향해 발원지 조사에 응하라고 요구하면 서로의 외교 관계를 약화시키게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것은 모든 나라의 이해관계를 위한 것"이라고 답했다. 위원장은 "이 판데믹 사태는 너무나 많은 피해를 가져왔다"면서 "다음에는 더 잘 대비를해야 하기 때문에 조사가 필요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EU와 중국 간 외교 문제와 관련해서는 앞서 중국이 독일 정부와 EU 등을 향해 "중국이 코로나19 사태를 잘 관리했다는 식으로 유화적으로 말해달라"는 접근을 해온 사실이 알려져 유럽 내에서 논란이 돼왔다. 호세프 보렐 EU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중국이 그런 의사를 표한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독일에서는 내무부 장관이 이를 인정한 바 있다. 지난 달 26일 독일 언론 벨트암손탁에 따르면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부 장관은 마가레테 바우제 의원 질의에 대해 "최근 중국 외교관 등 외무부 관계자들이 정부 관료에게 개인적으로 접근해 코로나19 발원지와 중국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해 우호적인 말을 해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으나 연방 정부는 이런 요청을 거절했다"는 내용의 서면 답변을 했다고 이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국제 사회에서는 각 국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중국을 겨냥해 '코로나19 발원지를 규명하라'면서 자국 정부 등을 압박하고 나섰다. CNBC는 독일 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호주
등지에서 의원들이 이런 요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발원지 조사'는 언뜻 보면 당연한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외교적 갈등이 되고 있다. 지난 27일 청징예 호주 주재 중국 대사는 호주 언론 오스트레일리안 파이낸셜 리뷰호주에 대해 "호주 정부가 코로나바이러스 발생 원인 조사를 진행한다면, 호주의 '불친절한' 태도 때문에 중국 학생과 관광객들의 호주 방문이 끊길 수도 있다"는 경고식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30일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중국의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가 발원지라고 강력히 자신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이날 미국 정보국(DNI)은 "코로나19는 인간이 만들어냈거나 유전자 변형으로 조작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서 "바이러스가 동물 접촉으로 발생했는 지 혹은 우한 바이러스연구소 사고 결과로 나온 건지 여부를 철저히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지난 달 '코로나19와의 전쟁 승리'를 선언했지만 바이러스 발생 원인 등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같은 달 12일 중국의 자오리젠 외무부 대변인은 "코로나19는 미군이 유포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발원지 논란을 야기했다. 중국 당국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불법 야생동물 소비를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했지만 베이징중의병원 등 의료기관을 앞세워 '곰 쓸개(웅담)와 염소 뿔, 식물 추출물을 섞어 만든 담열청 주사액이 코로나19 치료에 좋다'는 식으로 야생동물을 활용한 중의학을 홍보하고 있다. 영국 언론 텔레그래프는 지난 26일 이같은 내용을 보도하면서 중국 측 모순을 지적했다.
중국은 '코로나 외교'에 한창이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의 "투명하고 빠르게 대응해 전세계 피해를 줄였다"는 호평 속에 시진핑 국가 주석은 지난 3월 10일 후베이성 우한을 방문해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인민 승리'를 선언했고, 이후 '일대일로'(중국 중심 경제협력벨트) 관심 국가인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을 비롯해 중남미·아프리카에 마스크와 진단 키트 등 의료 장비를 원조한 후 판매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국 정상들은 중국을 공개 비난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 달 17일 파이내셜타임스인터뷰를 통해 "중국이 코로나19대처를 잘했다고 보는 것은 뭘 모르는 아주 순진한(so naive) 관점"이라면서 중국을 직접 언급해 비판했다. 대통령은 "(코로나19사태와 관련해)중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투명하게 알 수 없다"면서 중국 체제에 대한 불신을 표했고 "EU는 중국에 의료장비와 약품을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프랑스와 유럽은 경제적 주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같은 달 16일 영국에서는 도미니크 라브 외무부 장관이 "중국과 예전같은 비즈니스 관계로 돌아갈 수 없다"고 발언해 눈길을 끈 바 있다. 라브 장관은 당시 코로나19에 감염돼 입원 치료를 받던 보리슨 존슨 총리를 대신해 총리 업무를 맡고 있었다. 장관은 "중국이 코로나19 조기 대응에 성공했다는 것 대해 심층적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불신감을 드러냈다. 영국 다수당인 보수당 소속 톰 투겐트하트 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도 "우리는 무역만 우선 순위로 삼고 중국과 관계를 강화한 대가를 지금 치르게 됐다"면서 "중국 때문에 전세계인의 건강이 위험에 빠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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