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무역기구(WTO) 내 개발도상국 지위 문제를 제기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관련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도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비교적 발전된 국가'에 속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트럼프 대통령은 90일 안에 WTO가 진전된 안을 내놓지 못하면 해당 국가에 대한 개도국 대우를 일방적으로 중단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는 처음으로 이 문제가 논의됐다. 홍 부총리는 "WTO에서 다른 개발도상국들이 우리나라의 개도국 특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어 앞으로 개도국 특혜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개도국 특혜는 국내 농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으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만큼 국익을 우선해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WTO에서 개도국으로 분류돼 있지만 1인당 국민소득 등 주요 경제 지표에서 WTO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발전했다. 개도국 지위 유지가 사실상 어렵다는 의미다. 개도국 지위가 유지된다고 해도 앞으로 있을 농업협상에서 예전과 같은 우대를 받기는 쉽지 않다. 다른 회원국들이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도국 지위를 잃는다고 해도 당장 농업 부문에 피해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차기 WTO 농업협상이 타결되고 나서 국내 절차가 끝난 뒤에 그 영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현재 새로운 농업협상이 진행되지 않고 있는데다 협상이 시작된다고 해도 미국과 중국 등 국가별로 첨예하게 이해가 엇갈려 쉽게 타결되기 어렵다. 최소 10년은 현재 상황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때는 아니다. 개도국 지위를 잃을 것이 확실시되고 있는 만큼 피해를 줄이기 위한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 중국 등 주요 국가들과 관세철폐 협상을 진행하고 있어 농업 시장 개방은 불가피하다. 홍 부총리도 "글로벌 경제와 연관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WTO 체제 유지, 강화와 역내 무역체제 가입이 불가피하다"며 "국내 제도를 글로벌 통상 규범에 맞게 선제적으로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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