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 도착해 이튿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만나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이후 교착된 북한 비핵화 해법을 논의한다.
한미 정상이 머리를 맞대는 것은 하노이 담판이 결렬된지 42일 만이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속내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먼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다는 점에서 한미 정상이 어떤 대안을 찾아낼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게 대화의 창을 여전히 열어두고 있지만 대량살상무기(WMD)의 완전한 폐기라는 종착점에 북한이 먼저 동의해야 한다는 이른바 '빅딜'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북측은 아직 단계적 거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청와대는 '굿 이너프 딜(충분히 좋은 거래)'이라는 중재 개념을 언급한 바 있지만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북측과 접촉하려면 백악관 의중을 면밀히 파악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번 방미의 1차 목적은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을 문 대통령이 직접 타진하는 데 있는 셈이다. 나아가 문 대통령이 제시하는 절충안을 트럼프 대통령이 수용한다면 미북 비핵화 협상에 다시 숨통이 트일 수 있다.
하지만 워싱턴 조야에선 문 대통령이 부분적인 대북 제재완화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할 경우 자칫 한미 정상회담이 공회전할 가능성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이 같은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할 경우 한미 관계만 더 경색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는 형편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내 강경파들에 비해 유화적 태도를 유지하고 있으나 지난 6일(현지시간) 라스베이거스 연설에서 '올바른 합의(right deal)'를 강조했다. 현재 국면에서 대북제재 해제를 수용하진 않겠다는 뜻을 재확인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미국 시사지 타임은 8일(현지시간) 한국 언론을 인용해 "문 대통령이 이번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대북 제재 완화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연구원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선 대북제재 완화 논의보다 대화와 제재를 병행해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고 '미국의소리(VOA)'가 이날 보도했다. 북한에 대해 보수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클링너 연구원은 "북한의 대화 목적은 처음부터 정권 돈벌이 수단의 회복이었다"면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도 북한 정권의 캐시카우"라고 주장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 연구원도 "지금은 북한이 미국의 방향으로 움직일 차례"라며 "문 대통령이 미국의 비핵화 접근법을 완화하려고 시도한다면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들의 주장에는 제재 수위를 더 높이면서 북한을 더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는 워싱턴 조야의 강경론이 반영돼 있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협상을 중재할 것이 아니라 미국과 더욱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비핵화에 대한 접근방식 자체가 판이하게 다른 상황에서 접점을 모색하려면 '포괄적 목표'에 대한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크리스토퍼 힐 전 6자회담 미측 수석대표는 이날 '자유아시아방송(RFA)'을 통해 "미북은 먼저 최종 결과에 대한 '프레임 워크(framework·기본틀)'에 합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정책조정관도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향한 포괄적 로드맵을 마련하고 첫번째 조치로 북한의 핵동결이 필요하다"며 "한국은 북한에게 미국과 실무협상에 나서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 = 신헌철 특파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에 대해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