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무부가 17일(현지시간) 러시아의 대선 개입 의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측근들의 러시아 내통 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를 전격 결정했다.
이같은 결정은 같은날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이 '특검 수용 불가' 입장을 재차 강조한 직후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특검은 불필요하다는 주장을 고수했으나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집권 여당인 공화당 내에서도 '탄핵론'이 제기되는 등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결국 특검을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드 로즌스타인 법무부 부장관은 이날 러시아 스캔들 특검 수사 방침을 확정하고 로버트 뮬러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특검으로 임명했다. 검사 출신인 뮬러는 2001년 법무부 부장관 대행을 거쳐 그해 9월부터 2013년 9월까지 12년간 FBI 국장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로즌스타인 부장관은 이날 특검 임명 후 발표한 성명에서 "법무장관 대행으로서 특검을 임명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공식 명령계통에서 벗어나 독립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에게 수사를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특검 임명은 법무장관의 고유 권한이다. 법무장관 유고시에는 법무장관 대행이 임명한다. 로즈타인 부장관이 이날 특검을 임명한 것은 그가 러시아 의혹 수사와 관련해서는 현재 법무장관 대행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캠프 출신인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은 대선 기간 러시아 당국과 접촉한 사실이 드러나 본인 스스로 이 사건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지난 3월 초 선언한 바 있다.
전격적인 특검 임명으로 러시아 스캔들 조사는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칼끝이 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야당인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9일 수사 책임자인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을 해임하자 수사방해 행위라며 특검을 통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해 왔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재 하원과 상원에서 두 가지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 조사를 통해 러시아 수사의 진상이 규명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특검 수사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뜻임을 시사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코미 전 국장에게 수사중단 압력까지 넣었다는 이른바 '코미 메모'가 폭로된 이후 민주당은 물론 집권 여당인 공화당 내에서도 탄핵론을 제기하는 등 압박이 고조되자 결국 특검을 수용했다는 설명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전날 코미 메모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14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코미 당시 FBI 국장과 독대하며 "당신이 이 사건을 놔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코미 당시 국장은 이같은 대통령의 요구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2쪽 분량의 기록을 남긴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의회에서는 '트럼프 탄핵론'이 공론화되고 있다. 민주당 알 그린(텍사스) 하원의원은 이날 본회의장 발언을 통해 "이 나라와 미국 헌법에 대한 의무감으로 나는 트럼프 대통령을 사법방해 혐의로 탄핵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공화당에서조차 탄핵론에 동조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공화당 소속인 저스틴 아매쉬(미시간) 하원의원은 이날 기자로부터 '코미 메모'가 사실일 경우 탄핵감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렇다"고 답변했다. 코미 전 국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가운데 어떤 것을 더 신뢰하느냐는 질문에는 "코미 국장을 더 신뢰한다"고 답했다. 이에 앞서 지난 16일 공화당 중진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애리조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내통 관련 의혹이 워터게이트 사건 규모에 도달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러시아 관련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전날 '코미 메모' 보도를 내놨던 NYT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법무부 수사 선상에 올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공직 임명을 강행했다고 보도했다.
[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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