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대통령이 아니다(Not My President)”.
9일(현지시간) 시카고 도심은 성난 시위대들의 함성으로 가득찼다.
수천 명의 시위대들은 미국 내에서 두번째로 높은 건물인 시카고 트럼프 타워 앞에 모여 성 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빛 깃발을 흔들며 “봉기할 때(Time to Revolt)”라고 외쳤다. 거리를 가득 메운 시위대들은 미시간 호수 인근 고속도로를 점거했고, 근처를 지나던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려 시위대를 응원했다.
뉴욕과 워싱턴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연출됐다.
뉴욕에서는 수천 명의 시위대들이 “성차별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트럼프는 꺼져라”고 외치며 유니언 스퀘어에서 맨해탄 중심가에 있는 트럼프 타워까지 행진했다. 트럼프 타워 앞에 도착한 시위대는 입을 모아 “그녀(힐러리 클린턴)가 더 많은 표를 얻었다”고 소리쳤다. 워싱턴에서는 이민자들이 백악관 근처에 모여 “트럼프는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적힌 플랫카드를 앞세우고 시위를 벌였고, 수백 명의 청년들이 모여 촛불시위를 벌인 뒤 최근 개관한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까지 행진했다.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이 확정된 직후 미국 곳곳에서 반(反) 트럼프 시위가 벌어졌다. 트럼프의 당선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거리로 대거 쏟아져 나왔고, 일부는 쓰레기통에 불을 붙이고 트럼프 모형을 불태우는 등 과격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로스앤젤레스, 오클랜드, 버클리, 새너제이, 시애틀 등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서부 지역 도시들에서는 고등학생들이 교사와 함께 거리로 나와 트럼프 반대 구호를 외치는 모습도 흔하게 목격됐다. 트럼프 반대 시위는 애틀랜타, 댈러스, 캔자스시티 등 트럼프가 승리한 지역의 도시들에서도 열렸다.
선거가 끝난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미국 사회는 심각한 대선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트럼프 반대 움직임은 소셜미디어로도 퍼져, 트럼프에 반대하는 게시물이 쏟아지고 있다. 트위터에는 ‘내 대통령이 아니다(#NotMyPresident)’, ‘아직 그녀와 함께(#ImStillWithHer/#StillWithHer)’라는 해시태그를 단 트윗이 수십 만 건씩 올라왔다.
선거 전부터 우려해 왔던 분열과 갈등이 현실화되는 모습을 보이자 미국의 리더들은 서둘러 갈등 봉합에 나서고 있다.
대선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이날 오전 뉴욕 맨해튼 뉴요커호텔에서 승복연설로 진한 여운을 남겼다. 힐러리는 “우리는 이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한 뒤 “우리는 트럼프에게 열린 마음으로 임하고, 그에게 나라를 이끌 기회를 줘야 한다”고 지지자들을 다독였다.
힐러리는 “여러분이 느끼는 절망감을 나도 느낀다. 이는 상당히 오래 갈 것”이라며 패배의 충격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내비치기도 했다. 북받쳐오르는 감정에 말을 잊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가 성공적인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힐러리는 “우리의 민주주의는 평화로운 정권교체에 달려 있다”며 새 대통령에 협조해줄 것을 당부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트럼프 당선인의 성공을 기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향해 “우리 미국민은 그가 성공하고 단합해서 국가를 잘 이끌길 성원한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직은 어떤 한 개인보다도 큰 자리”라며 이같이 밝힌 뒤 “우리는 한팀이며, 우리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아니라, 미국민과 애국심을 우선에 두고 있다”며 대선으로 갈라선 미국이 단합하길 당부했다.
그러면서 10일(현지시간) 트럼프 당선인과 만나 성공적이고 매끈한 대통령직 인수인계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힐러리를 지지해 왔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도 이날 뉴욕타임스(NYT) 온라인판에 글을 올려 “큰 비극적 사건이 있더라도 항상 끝은 해피엔딩이었다”며 희망을 잃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는 “포기하는 것은 선택지가 아니다. 세계는 품위 있고 민주적인 미국을 원하고 있다”며 미국이 계속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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