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결국 전 세계가 우려하는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한마디로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갈망이란 해석이 나온다. 유권자들이 이에대한 갈망이 워낙 크다보니 인류 보편적인 건전한 상식이나 화합, 포용 등의 가치를 넘어섰다는는 것이다.
‘트럼피즘’으로 불리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추구하는 가치는 미국 우선주의로 정리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 이기주의’로 폄하하기도 한다. 공화당 주류 정치인들조차 등을 돌린 ‘막말’과 ‘기행’으로 점철된 트럼프를 미국 국민들이 선택한 것은 이같은 미국 우선주의에 깊숙히 동조했기 때문이다.
미국에 조금이라도 손해가 된다 싶은 자유무역협정(FTA)은 폐기하고, 미국의 오랜 동맹관계조차 미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 싶으면 재고하겠다는 것이 트럼프의 주장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국경을 넘는 이민자들을 장벽으로 가로막고 미국 내 불법 이민자들은 축출하겠다는 것이 트럼프의 공약이다.
트럼프가 한때 출연했던 NBC방송의 리얼리티쇼 ‘어프렌티스’에서 도움이 되지 않거나 부족하다 싶은 대상에게 외쳤던 “당신 해고야(You’re fired)”를 국가 차원으로 끌어올린 것에 다름 아니다.
일등국민을 자처하며 이민자들과 화합하고 세계화를 부르짖어온 미국인들이 이같은 트럼프의 공약을 추종하리라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팍팍한 현실이 결국 미국인들의 선택을 강요했다.
무슬림을 추종하는 자생적 테러리스트의 잇따른 총기난사, 백인 경찰을 향한 흑인사회의 저격, 중국산 수입품이 미국의 쇼핑몰을 장악한 현실, 미국의 생산현장을 점령한 히스패닉 이민자들, 이런 것들을 더이상 견디지 못한 미국으로 하여금 트럼프를 선택하도록 몰아세웠다.
미국 우선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고립주의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트럼프의 당선은 미국판 고립주의다. 지난 6월 치러진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는 고립주의 현상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난민을 배척하고 EU와 섞이기를 거부한 것이 브렉시트라면 이민자를 축출하고 자유무역을 부정하는 것이 트럼피즘의 실체다.
다수가 힐러리 승리를 예상했을 때, ‘제2의 브렉시트’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고했던 트럼프의 경고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다수 전문가들과 언론의 예측이 보기좋게 빗나갔다는 점도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의 공통점이다.
고립주의는 비단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EU 내에서는 영국의 뒤를 쫓아 추가 탈퇴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고 중국의 경우 군사굴기라는 ‘마이웨이’를 추구하고 있다.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뜻이다. 캐나다 퀘백주와 스페인의 카탈루냐, 미국 텍사스에서 분리독립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도 고립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번 선거는 또 경제회복 부진, 불법 이민자 문제, 자유무역 확대에 따른 일자리 감소 등 산적한 국내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법을 내놓지 못했던 기득권 정치세력에 대한 심판과 분노의 표출로 볼 수 있다.
8년간 영부인으로서 백악관 생활을 했고 뉴욕 상원의원을 거쳐 오바마 1기 행정부에서 국무장관까지 지낸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미국의 기득권 정치세력을 대표하는 인사였다. 사설 이메일 서버를 사용한 힐러리의 부도덕함은 지탄의 대상이 됐고, 국무장관직을 클린턴재단 축재에 활용한 정황은 밑바닥 민심의 시각에서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워싱턴DC 주류 정치권의 적폐로 여겨졌다.
동성결혼 허용 등 미국 사회의 급진적인 진보화를 우려하는 보수진영에서 민주당 정부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결기도 힐러리를 지지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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