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결국 탄핵당했다.
브라질 상원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전체회의를 열어 호세프 대통령 탄핵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61표, 반대 20표로 통과시켰다. 탄핵 사유는 호세프 대통령이 연방정부의 막대한 재정적자를 막기 위해 국영은행의 자금을 사용하고 이를 되돌려주지 않는 등 재정회계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었던 호세프는 이로써 1992년 탄핵당한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 전 대통령에 이어 브라질 역사상 사상 두번째로 탄핵당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지난 5월부터 직무 정지된 호세프를 대신해 대통령직을 대행해 왔던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이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다. 테메르 신임 대통령은 이날 의회에서 열린 취임식 직후 TV와 라디오를 통해 대국민 성명을 발표, 긴축 조치와 연금 개혁 등으로 정부 지출을 축소해 경제를 되살리고 투자 유치를 위해 정치적 안정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테메르 대통령은 호세프 전 대통령의 잔여임기인 오는 2018년 12월 31일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된다. 첫 공식 일정은 오는 4~5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 참석이다. 그는 “대통령직을 맡아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고 간단하게 소감을 밝혔다.
이로써 지난해 12월 브라질 하원이 탄핵 절차를 개시한 이래 9개월 가까이 이어져온 탄핵 정국은 일단락됐지만, 브라질은 당분간 혼란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당장 쫓겨난 호세프는 대법원에 위헌소송을 제기하는 등 끝까지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호세프 전 대통령은 “그들은 우리에게 이겼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착각”이라면서 “우리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으며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해 정권을 되찾기 위한 행보에 나서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무엇보다도 경제 침체가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 분위기다.
호세프가 쫓겨난 표면적인 이유는 ‘재정회계법 위반’이지만 사실상 경제 침체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탄핵 사태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호세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던 2010년 7.6%에 달했던 브라질 경제성장률은 글로벌 경기침체로 원자재 가격이 폭락하면서 지난해 -3.8%로 곤두박질쳤다. 올 2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0.6%에 그치면서 6분기째 역성장이 이어지고 있다. 2분기를 고비로 최악의 국면을 지나 성장세를 서서히 회복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지만, 올해 성장률 역시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브라질 경제성장률이 -3.3%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6.8%였던 브라질 실업률은 7월 현재 11.6%까지 치솟았고, 올해 물가상승률은 8.6%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 취임한 테메르 대통령의 위기 관리 능력도 의문시되고 있어 브라질 혼란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새 대통령 역시 호세프를 괴롭혔던 망가진 국가경제와 성나고 분열된 유권자들을 대면해야 한다”며 “탄핵안 가결로 브라질 정치위기가 해소될 것이라고 예상할 근거가 없다”고 보도했다. 브라질 정치 전문가인 매튜 테일러 아메리칸 대학 교수는 WSJ와 인터뷰에서 “수개월간 이어진 탄핵 정국이 브라질 국민들의 정치혐오을 부추겼다”며 “이같은 정치혐오는 호세프 퇴임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와관련 테메르의 정치 기반은 취약하다.
여론조사기관 다타폴랴(Datafolha)가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압도적인 탄핵 찬성률에도 불구하고 테메르 지지율은 14%에 그쳐, 탄핵 대상인 호세프(10%)와 별 차이가 없었다. 테메르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도 짰다. 긍정적이라는 응답이 13%에 그쳐, 부정적이라는 응답(39%)의 3분의 1에 그쳤다. 테메르 개인에 대한 신뢰도를 묻는 질문에는 66%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테메르는 지난 5일 리우올림픽 개막식에서 관중들로부터 야유를 받은 바 있다.
인기만 없는 게 아니다. 테메르 정부 일부 각료들은 물론 본인까지도 부패 의혹에 연루되면서 퇴진 압력을 받고 있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지난달 31일에도 상파울루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좌파 성향의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 학생단체 등이 “Fora Temer(테메르 나가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퇴진 촉구 시위를 벌였다.
경제에 온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기업의 투자 확대가 필요하지만, 정치적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태에서 기업들이 투자를 늘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
테메르는 취임 일성으로 연금과 사회복지 시스템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오는 10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지지율을 하락을 우려하는 의회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자칫하다가는 취임과 동시에 곧바로 레임덕을 맞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제 경제정책 조사기관인 피터슨인스티튜트의 모니카 디볼 연구원은 “호세프가 탄핵됐다고 해서 이미 기능이 망가진 브라질 정치 시스템이 한순간에 회복될 수는 없다”며 “불행히도 다음 대선까지 테메르에게는 매우 짧은 시간 밖에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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