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고(故)스티브 잡스 창업자로부터 회사 경영권을 넘겨 받은지 24일로 5년이 됐다. 지난 5년간 잡스 후광덕분에 쿡 CEO의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매출은 두배로 뛰었고 주가는 사상최고치를 경신했다. 때문에 실리콘밸리 전문가들은 “많이 팔리는 것이 혁신이다”라는 쿡 CEO 주장에 어느 정도 동조하고 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를 그리워하는 애플 고정팬들에겐 혁신이 사라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스티브 잡스 시절 내놓은 ‘아이폰’ 외에 히트작이 없어 ‘혁신가의 딜레마’에 빠졌다는 지적이다. 지난 5년간은 그럭저럭 버텼지만 앞으로 애플 신화가 흔들릴 수 있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쿡이 애플 CEO로 취임한 이후 5년간 애플 주가는 112% 올랐다. 애플 시가총액이 5년만에 2배로 뛰어 엑손모빌을 제치고 세계에서 몸값이 가장 높은 회사가 됐다. 애플의 지난해 순익은 530억달러(59조원)로 페이스북, 알파벳,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를 다 합친 것보다 더 많다. 아이폰 누적 판매 10억대 돌파라는 금자탑을 세우기도 했다. 지난해 애플 매출은 2313억달러로 역시 5년만에 두배로 늘었다. 애플 직원도 지난 5년간 2배 이상 확대됐다. 애플이 국내외에 쌓아둔 현금은 2320억달러(295조원)로 사상최고치다. 매출이 큰 폭으로 성장한 것은 팀쿡이 내세우는 지난 5년간 대표적 업적이다. 쿡 CEO는 “이미 충분히 커버린 회사가 더이상 성장할 여력이 있겠는가?”라는 주위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회사를 더 키웠다는 점에서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지난 2014년 쿡CEO는 화면 크기를 크게 키운 아이폰6를 출시해 큰 성공을 거뒀다. 대화면을 가진 아이폰6는 애플에 사상 최대 수익을 안겨줬다. 생전의 잡스는 대화면 아이폰 출시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팀쿡으로선 ‘잡스의 유령’과 정면으로 맞서는 결단을 했던 셈이다. 그 결단은 보기 좋게 성공했다. 애플은 그 후 4.7인치 아이폰, 5.5인치 아이폰플러스, 4인치 아이폰SE로 제품군을 확대해 매년 3개의 새로운 아이폰을 선보이고 있다. 애플이 천문학적 규모의 현금을 쥐고 있는 것은 팀쿡의 경영 스타일 때문이다. 천문학적 규모의 현금을 토대로 애플은 필요할 경우, 언제든 어느 기업이나 인수할 수 있는 여력을 갖추게 됐다는 평가다. 시장조사 전문기관 CCS인사이트 벤 우드 연구원은 “쿡은 잡스의 자리를 물려받을 당시 최적임자였다”며 “쿡은 잡스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필요한 일을 잘해낸 덕분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CNBC는 “팀쿡은 전임자 잡스의 카리스마 넘치는 혁신을 따라가지는 못했지만 애플을 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기업으로 만든데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스티브 잡스’라는 거인의 사망 후 갈팡질팡할 수도 있었던 애플의 외형(매출, 제품, 시장)을 키우고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기업으로 만든게 팀 쿡의 리더십 때문이란 진단이다.
반면 팀쿡은 관리형 스타일로 아이패드 등 기존 제품을 개선하는 작업을 주로 진행하는 등 현실을 점진적으로 개선하는데 집중, 애플만의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하지 못해 ‘혁신가 딜레마(Innovator’s Dilema)’에 빠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혁신가의 딜레마란 시장을 선도하는 기술로 시장을 장악했던 거대 기업이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현실에 안주, 혁신을 이뤄내지 못하고 새로운 기술을 가진 후발 업체에 시장 지배력을 잠식당하는 현상을 말한다. 쿡 CEO가 현상 유지에 급급하다보니 잡스가 아이팟이 애플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를 넘어설때에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사업을 잠식(카니발라이제이션)할 수 있는 ‘아이폰’을 내놓은 모험을 통해 애플을 혁신적인 스마트폰 선두주자로 재탄생시켰던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최근 “애플 전성기는 지나갔나라는 질문을 쿡 CEO가 피해가기 어렵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애플이 아이폰으로 휴대폰 시장을 재편했듯, 애플TV를 내놓고 미디어 시장을 장악할 것이란 기대가 컸지만 애플 TV실체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모바일 결제서비스 애플 페이와 음악 스트리밍 애플 뮤직을 신규 서비스로 내놨지만 성과는 지지부진하다. 아이폰 출시 10년이 다가오도록 아직 ‘애플=아이폰’ 등식을 깨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쿡CEO가 내놓은 유일한 혁신제품인 ‘애플 워치’성과도 기대 이하다. 지난 2분기 애플 워치 출하량(160만대)은 지난해 같은 기간(360만대)에 비해 55.5% 급감했다. 웨어러블 워치 시장 점유율은 1위이지만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72%에서 47%로 확 쪼그라들었다. 쿡 CEO가 자랑하는 소프트웨어 분야 매출도 ‘딜레마’에 직면했다는 분석이다. 아이튠즈, 앱스토어 등 애플의 서비스 매출은 지난해 230억달러를 기록, ‘소프트웨어 회사’라 불릴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는데 이는 소프트웨어 단독 매출이라기 보다는 아이폰 판매가 늘어난데따른 현상에 불과하다. 애플은 13분기 연속 성장하다 아이폰 판매 둔화 때문에 최근 2분기 연속 매출이 줄었다. 이는 소프트웨어 매출이 줄어들 수 있음을 암시한다. 애플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기어VR’, 구글이 ’알파고’ ‘카드보드’ 등으로 미래기술(AI, 증강현실, 가상현실)에 큰걸음을 내디딛고 있는 반면 애플은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못해 ‘실기했다’는 평가도 있다. 애플 특유 제품이 나오겠지만 이미 선발 주자들이 선점해 있는 시장을 뚫기 쉽지 않다는 전망이다.
[실리콘밸리 = 손재권 특파원 / 서울 = 장원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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