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된 막말로 공화당 주류세력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가 결국 사고를 쳤다. 이라크전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무슬림 참전용사 부모를 비하한데다 잇따라 내놓은 친(親)러시아 발언이 거센 역풍을 맞으면서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1일(현지시간) CNN방송에 따르면 지난 달 29~31일 조사기관 ORC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52%, 트럼프는 43% 지지율을 기록해 힐러리가 9%포인트 앞섰다. 이는 공화당 전당대회 직후 실시된 7월22∼24일 조사에서 트럼프가 48%로 힐러리 45%를 앞서던 결과가 뒤집어진 것이다. 트럼프가 무슬림 미군 전사자 부모를 공격하고 친러시아성 발언을 내뱉으면서 힐러리 진영은 물론 공화당 내에서도 거센 비난이 터져나오고 있다.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1일 오른 손에 헌법 소책자를 든 사진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이라크 전쟁때 사망한 참전용사 부모 하던 키즈르 칸이 민주당 전당대회때 힐러리 지지연설을 하면서 헌법 소책자를 들고 “트럼프는 헌법을 읽은적이 있는가”라고 비난했던것과 똑같은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라이언 의장은 성명을 통해 “많은 무슬림 미군이 용감하게 복무하고 희생을 했다”며 “(이라크에서 사망한)칸 대위가 바로 그런 용감한 군인의 한 사례이고 그 가족들의 희생은 항상 존중돼야 한다”고 이들 가족을 비하한 트럼프를 비판했다. 공화당 핵심인사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도 성명에서 “트럼프는 최근 미군 전사자 부모를 비난했다”며 “나는 물론 공화당 지도부와 공화당원들은 트럼프 발언에 동의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 미군 희생자 가족 모임인 ‘골드 스타 패밀리스’는 트럼프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공식사과를 요구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병합을 두둔하는 듯한 트럼프 발언도 당내 비판에 직면했다. 트럼프는 최근 인터뷰에서 “크림반도 사람들은 차라리 러시아에 속해 있는 것을 선호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트럼프에 대한 비판여론이 커지면서 급기야 공화당 경선 후보 젭 부시의 핵심참모였던 샐리 브래드쇼는 “트럼프는 공화당을 대변하지 않는다”며 “공화당을 탈당해 오는 대선에서 힐러리에게 투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브래드쇼는 “지금은 공화당보다 미국을 우선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비난의 강도가 세지고 있지만 트럼프는 물러서지 않고 있다. 트럼프는 무슬림 전사자 가족 비하발언과 친러시아 발언을 비판적으로 보도한 CNN을 겨냥해 “힐러리를 위한 ‘언론상점(press shop)’”이라고 비하했고 뉴욕타임스(NYT)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직하다”며 자신의 유세 취재 금지를 시사했다. 현재까지 트럼프 캠프가 선거운동 행사 취재를 금지한 언론매체는 워싱턴포스트(WP), 허핑턴포스트 등 20여개에 이른다.
한편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힐러리를 위한 투표참여 운동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버핏 회장은 이날 네브래스카 오마하에서 열린 힐러리 유세에 지지연사로 등장해 이같이 밝히고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를 향해 “납세 자료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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