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주일새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의 태도가 달라졌다. 시장 기대에 훨씬 못미친 미국 5월 고용지표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에따라 금융시장에선 6월 미 기준금리 인상은 사실상 물건너갔고, 7월이 아니라 아예 9월로 인상시점이 늦춰질 수 있다는 관측이 속속 나오고 있다.
옐런 의장은 6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 국제문제협의회(WAC) 주최 강연에서 “경제 전망에 상당한 불확실성이 있다”며 세계경제 동향, 미국 내수회복 강도, 미국 생산성 증가 속도, 물가 상승 추세 등이 불확실하다고 지목했다. 특히 “영국에서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에 찬성하는 투표 결과가 나온다면 경제적 파장이 상당할 것”이라고 염려를 나타냈다.
이에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경제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연준이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옐런 의장이 시사했다”고 분석했다. 옐런 의장은 다음번 금리 인상시점과 관련된 언급을 이날 아예 하지 않았다.
이같은 조심스런 태도는 지난달 27일 하버드대 간담회에서 옐런 의장이 “앞으로 수개월 내(In the comming months) 기준금리 인상이 적절할 수 있다”고 밝힌 것에 비하면 한발 후퇴한 것이다. 옐런의장의 지난달 발언은 금리인상 시점에 6월도 포함될 수 있다는 쪽으로 월가에서 해석됐지만, 이날 연설의 전체 맥락은 그렇지 않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크리스 러프키 도쿄미쓰비시UFJ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에 “옐런 의장이 이번 연설에서 기준금리 인상 시점을 언급하지 않은건 금리인상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의중을 시사한 것”이라며 “6월 인상론은 사라졌고 7월도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 같다”고 해석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가 미국 국채선물 가격 추이를 바탕으로 산출하는 6월 기준금리 인상 확률은 지난달에 한 때 34%까지 높아졌지만 5월 고용지표가 발표된 직후 5.6%로 급락했다. 현재는 3.8%에 불과해 6월 인상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반응이다. 7월이 25.8%, 9월이 40.1%로 오히려 지금은 9월 인상설이 주류를 이뤘다. 옐런 의장은 “미국 경제는 계속 개선되고 있으며 점진적으로 기준금리가 인상될 필요가 있다. 현재의 통화정책은 일반적으로 적절하다”고 밝혀 미국 경제를 보는 기본적인 시각은 변함이 없음을 내비쳤다.
옐런 의장이 전날 여전히 점진적인 기준금리 인상이 적절하다고 밝혔지만 시장은 이를 악재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7일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 아시아 증시가 오름세를 나타냈다. 대만 자취엔지수와 홍콩 항셍지수는 오후 4시 현재 각각 0.96%와 1.26% 상승했다. 양기인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그동안 신흥국 증시가 박스권에 갖혀 있었던 것은 달러 강세 전망 때문이었다”며 “달러가 약세를 보이면서 당분간 신흥국 증시에 글로벌 자금이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주가상승은 일회성에 그칠 뿐 지속성을 가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도 제기된다. 유승민 삼성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올해 첫 금리인상 시점이 9월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 때문에 안도 랠리가 나타났지만 이같은 상승세가 지속되려면 경기 회복이 뒷받침 돼야 한다”며 “기업들의 2분기 실적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증시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 외환시장에서는 달러당 원화값이 전일 종가보다 20.9원 급등한 1162.7원에 거래를 마쳤다.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심리가 강화된 덕분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못하고 숨고르기에 나설 것이며 이에따라 달러당 원화값도 1160원대 내외를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봤다.
미국 금리 인상이 당초 예상보다 미뤄질 것이라는 전망에 채권 시장에서는 국내 장단기 채권금리가 일제히 사상최저치를 경신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금리 상승 위험에 주춤했던 글로벌 채권형펀드로 다시 자금이 유입되며 한국을 비롯한 이머징 채권시장 수급을 개선시킬 것으로 내다봤다. 올 하반기 국내 경기 하강 위험이 커지면서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외국인 매수세에 힘입어 이날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 대비 0.018%포인트 하락한 1.405%로 사상최저치(채권값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시장금리 지표 역할을 하는 국고채 3년물 금리가 기준금리(연1.5%) 한참 아래로 떨어졌다는 사실은 그만큼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시장 기대감이 높다는 뜻이다. 채권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6~7월 중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국고채 5년물 금리도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밑돌게 됐다. 이날 국고채 5년물 금리는 전날 대비 0.019%포인트 떨어진 1.494%에 거래를 마감했다. 국고채 10년물도 0.023%포인트 하락한 1.715%에 거래됐다. 초장기물인 국고채 20년과 30년물 금리도 각각 0.022%포인트 0.019%포인트 하락하며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서울 = 김혜순 기자 / 김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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