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선주자가 된 도널드 트럼프가 사위 재러드 쿠시너(35)에게 정권인수위원회를 꾸리라고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말썽꾸러기' 장인과 '젠틀맨' 사위의 관계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쿠시너는 트럼프 캠프의 선대본부장인 코리 르완도스키, 전당대회 총괄책임자 폴 매나포트와 인수위원을 선정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쿠시너는 그동안 부동산 재벌 트럼프의 사위로만 알려졌습니다. 트럼프의 장녀인 모델 이반카와 2009년 결혼해 화제가 됐습니다.
장인처럼 부동산 기업을 운영하는 쿠시너가 주간지 '뉴욕 옵서버'의 발행인이라는 사실은 트럼프가 대선 정국에 등장하면서 주목받게 됐습니다.
쿠시너가 젊은 나이에 언론사를 소유하게 된 배경에는 가족의 정치적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뉴저지주의 유명한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찰스 쿠시너입니다.
찰스 쿠시너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제임스 맥그리비 전 뉴저지주지사,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등 민주당, 공화당을 가리지 않고 후원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뉴저지주지사 선거에서 고교 동창이었던 맥그리비측에 차명으로 38만5천 달러를 기부한 혐의에다 연방 정부의 선거자금 조사를 방해한 혐의까지 더해져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됐습니다.
재러드는 아버지가 구속됐을 때인 2006년 '뉴욕 옵서버'를 1천만 달러라는 비싼 값에 인수했다. 그는 당시 하버드 로스쿨 재학생이었습니다.
뉴욕 옵서버는 당시 발행부수가 5만 부에 그쳤지만, 뉴욕의 재력가들을 독자로 확보하고 있어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가업'을 물려받고자 하버드에서 법학을 공부했던 20대 청년은 아버지의 정치적 몰락을 전환점으로 언론사 발행인이 됐습니다.
'뉴욕 옵서버' 인수 후 쿠시너는 2007년 18억 달러에 맨해튼 건물을 사들이면서 단숨에 뉴욕에서 '거물'이 됐습니다.
그때 그가 남겼던 언론 인터뷰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등장과 함께 다시 회자하고 있습니다.
쿠시너는 CNBC 인터뷰에서 아버지 연배의 앵커가 "20대 청년이 벌써 거물이 됐군요"라고 말하자 "거물이라는 말을 쉽게 쓰는군요"라고 대답했습니다.
2년 뒤 쿠시너는 다시 전환점을 맞습니다. 그와는 성격이나 외모, 말투 등에서 정반대인 트럼프와 가족이 됩니다.
쿠시너의 동료나 주변 인물들은 한결같이 그가 예의 바르고 과묵한 데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성격이라고 말했습니다.
독설을 즐기는 데다 집에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서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는 트럼프와는 극과 극인 셈입니다.
아버지의 정치적 몰락과 트럼프와의 만남이라는 배경 속에 쿠시너는 '뉴욕 옵서버'를 통해 정가에 영향력을 조금씩 드러냅니다.
트럼프 등 부자들을 조롱했던 뉴욕 옵서버의 기사들은 사라졌습니다.
쿠시너가 이반카와 결혼할 때 개최한 호화 파티를 뉴욕 옵서버 기자들은 의무적으로 취재해야 했습니다.
최근에는 편집장인 켄 커슨이 지난달 21일 워싱턴DC에서 열린 미국 내 친(親) 이스라엘 유대계 로비단체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 연례총회에서 트럼프가 했던 연설의 연설문 작성을 도운 것으로 알려져 구설에 올랐습니다.
트럼프는 3일 인디애나 주 경선에서 승리해 당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뒤 재러드 쿠시너를 두고 "매우 성공한 기업인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부동산보다는 정치를 더 좋아한다"며 "어쨌든 정치에는 매우 뛰어나다"고 말했습니다.
공화당의 주류 정치 엘리트들을 경선에서 줄줄이 녹다운시킨 장인이 바라보는 사위의 모습입니다.
그의 주변에서는 쿠시너가 '대통령 트럼프'를 디딤돌로 삼아 아버지의 꿈을 이루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옵니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지난 5일 '재러드 쿠시너의 트럼프 카드'라는 제목의 장문 기사에서 쿠시너의 이러한 속내를 집중 조명하기도 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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