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마술사’ 스티브 잡스의 후광은 여기까지였을까.
2007년 아이폰 출시 이후 애플 성장세는 멈추지 않는 폭주기관차를 연상케 했지만 2003년 이후 13년만에 처음으로 전년 동기 대비 분기 매출이 감소하면서 애플 성장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애플은 2016 회계연도 2분기 매출(2015년 12월 27일∼2016년 3월 26일)이 전년 동기 대비 12.8% 감소한 505억5700만달러(58조1400억원)를 기록했다고 26일(현지시간) 밝혔다.
스마트폰 시장이 전세계적으로 포화 상태에 다다른데다 중국·대만·홍콩을 포함한 중화권 매출이 26% 급감한게 마이너스 성장 충격으로 이어졌다. 애플은 2014년 하반기 처음으로 대화면을 채택한 아이폰6 출시후 중국 스마트폰 시장을 석권하다시피했지만 흥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중국 토종브랜드가 아이폰6의 절반도 안되는 가격에 비슷한 성능을 갖춘 신제품을 한달이 멀다하고 쏟아내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애플의 절대적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한때 20%에 육박했던 중국시장 점유율(오프라인 판매대수 기준)이 지난달 11%까지 떨어졌다. 중국 토종브랜드인 오포, 비보에 이어 3위지만 온라인에 의존하는 샤오미까지 포함하면 4위로 밀려난다.
2011년 잡스를 이어 애플 최고사령탑에 오른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하면서 강달러, 글로벌 경기 부진 등의 악재를 꼽은 뒤 “상황은 어렵지만 우리의 미래를 바꾸지는 못한다. 미래는 매우 밝다”며 매출 역성장 충격을 애써 축소했다. 애플 매출의 3분의 2 가량을 책임지는 아이폰은 지난 분기에 5119만대가 팔려 전년 같은 기간보다 16.3%나 급감(약 1000만대)했다. 이처럼 아이폰 판매량이 줄어든 것은 지난 2007년 아이폰 출시 후 신제품 발매시기를 둘러싼 구조적인 요인을 제외한다면 실질적으로 9년만에 처음이다. 분기 순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22.8%나 쪼그라든 105억달러(12조원)에 그쳤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애플의 전성기가 끝난 것인가’하는 의문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애플은 현재 분기인 3분기 실적 전망치를 매출 410억∼430억달러로 제시해 2분기에 이어 3분기에도 매출 감소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월가 전망치 평균인 473억달러 보다 낮다. 작년 3분기 매출은 496억달러였다. 2개분기 연속 실적 충격이 예고돼 있는 셈이다.
애플은 2014년 하반기에 대화면을 탑재한 아이폰6를 선보여 최고의 분기 실적을 거두는데 성공했지만 삼성 갤럭시폰과 같은 대화면을 내세우면서 종전의 ‘혁신 아이콘’ 이미지가 퇴색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올해는 4인치 신제품(아이폰SE)을 선보였지만 시장 판도를 흔들지 못할거라는 비관론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다 아이패드 매출이 2년 넘게 정체 상태고 애플워치, 애플TV와 같은 신규 분야는 여전히 초기 상태에 머물러 있다. 샤이라 오바이드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는 “문제는 아이폰 외에 애플 성장세를 책임질 동력이 안보인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애플이 실망스런 실적을 내놓자 미국 현지에선 “실리콘밸리 성장 방정식이 한계에 달한 느낌”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애플의 한 임원은 “내년이면 아이폰 출시 10년이 되지만 아이폰 혁신에 대한 소비자들의 피로감이 커진것 같다”며 “어떠한 형태의 새로운 혁신을 줘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애플 실적에 대한 미 실리콘밸리의 반응은 차갑다.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많다. 새로운 형태의 기기를 갈망했던 소비자들에게 기존 제품을 답습한 아이폰SE를 내놓았을 때부터 이같은 실적 부진이 예상됐다는 분위기다.
애플 본사가 있는 쿠퍼티노 인근 가전양판점인 베스트바이의 마크 주호니(Mark Joohony) 매니저는 “지난해 출시된 아이폰 6S의 실망감 때문에 아이폰 구매 고객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 내에서 아이폰SE에 대한 반감이 컸다는게 주호니 매니저의 설명이다. 기자가 직접 찾은 인근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프라이즈(Fry’s) 매장에서도 비슷한 반응이다. 제이즌 빈튼 매니저는 “아이폰SE를 살 바에는 비슷한 가격의 중국 화웨이 제품을 사겠다는 소비자들이 많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해 출시한 아이폰 6S부터 ‘새로운 것이 없다’는 반응이 나오면서 아이폰 구매 고객이 급격히 줄고 있다는 설명이다.
애플 주가는 실적 발표 전인 26일 오후 미 나스닥시장에서 전날보다 0.69% 낮은 104.35달러에 마감했다. 나스닥 마감 4시간 후 애플 주식은 종가보다 약 8% 낮은 96달러선에 거래되기도 했다. 한편 세계 스마트폰 시장 이익의 80% 이상을 독식하는 애플 성장세에 제동이 걸리면서 삼성전자, 화웨이, 샤오미 등 경쟁사에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베이징 = 박만원 특파원 / 샌프란시스코 =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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