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초 세계 최대 반도체기업 인텔의 덕 데이비스 부사장과 커크 스카우겐 부사장은 해고 통보를 받았다. 지난 30년간 각종 굵직한 프로젝트를 주도해온 데이비스와 스카우겐 부사장이 퇴진한다는 소식에 직원들은 충격에 빠졌다.
인텔 중앙처리장치(CPU) 혁신으로 통했던 ‘쿼드 코어 프로세서’를 비롯해 ‘아이패드’ 등의 모태가 됐던 ‘울트라 씬’ 노트북 등이 모두 이들 손을 거친 히트상품들이다. 반도체업계에서 이들은 ‘무어의 아이들’로 통하기도 했다. 인텔 창업자 고든 무어가 제시했던 ‘무어의 법칙’(반도체 집적도가 18개월마다 2배로 증가)이 지배하던 PC산업 황금기를 풍미했던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어의 법칙을 주도했던 인텔은 지난 2월 공정 전환 주기를 2년에서 3년으로 바꾼다고 전격 발표했다. PC산업 정체로 무어의 법칙을 폐기한 것이다. 무어의 법칙 폐기와 인텔 황금시대를 이끈 거물의 퇴장은 위기에 빠진 인텔의 현주소다. 조만간 거대한 해고돌풍이 몰아칠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19일(현지시간) 인텔은 전체 인력의 11%에 해당하는 1만2000명을 감원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브라이언 크르재닉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직원들에게 보내는 이메일에서 “성장 산업에 투자할 돈을 마련하고 비용 절감을 위해 힘들지만 필요한 결정을 내렸다”며 “중요한것은 반세기 역사의 인텔이 살아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생존을 위해 인력 구조조정이라는 고육지책을 쓸수 밖에 없었다는 읍소다. CNN은 인텔의 위기배경에 대해 “PC 산업 퇴보와 함께 모바일의 부상을 빠르게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인텔은 무어의 법칙이 지배하던 1980~2000년 초반까지 CPU 등 연산장치와 메모리 공급을 통해 파죽지세로 성장했다. 하지만 아이폰·아이패드로 대표되는 애플과 모바일의 급부상으로 PC시대 몰락이 가속화하자 인텔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 집계에 따르면 올 1분기 세계 PC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9.6% 급감했다. 물론 시장변화를 좇아 인텔 역시 모바일 시장 진입을 위해 많은 투자를 했다. 지난해 3월 100억달러(11조원)에 주문형 칩 제조업체 알텔라를 인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바일칩 설계업체 ARM홀딩스의 칩과 구글 안드로이드 소프트웨어가 모바일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텔이 파고들 여지가 크지 않았다. 때문에 지난 2014년 4분기 인텔 모바일사업부가 42억달러의 손실을 내기도 했다.
‘PC 종가’로 불리는 100여년 역사의 IBM도 고전하긴 마찬가지다. 올 1분기까지 ‘16개 분기 연속 매출 감소’라는 초라한 성적표는 IBM의 흔들리는 위상을 대변하고 있다. IBM 주가는 19일(현지시간) 전거래일 보다 5.59% 급락한 144달러로 밀렸다. PC 제조기업으로 출발해 세계 컴퓨터 시장을 호령했던 IBM은 2000년대 초반까지 PC, 서버, 프린터 등 하드웨어를 주력으로 파는 회사였다. 하지만 델과 휴렛패커드(HP)에 밀려 3등으로 밀려나는 수모를 당한 뒤 회사 핵심사업을 싹 바꾸는 대수술을 감행했다. 2005년 중국 레노버에 PC사업부를 처분한게 대표적인 예다. 이후 IBM은 솔루션·소프트웨어·컨설팅에 집중하는 IT종합서비스기업을 표방했다. 2014년에는 반도체사업을 글로벌파운드리에 매각했다.
IBM의 자산매각에 대해 IT업계는 “배가 가라앉는걸 막기 위해 무거운 하드웨어를 모두 바다에 내던져버린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하드웨어 제조 부문을 쳐냈지만 지난해 초 IBM은 또 한번 하드웨어 사업 구조조정설에 휘말렸다. 메인프레임(대형 컴퓨터)과 스토리지 부분에서 대대적인 인력 감원 바람이 불 것이라는 얘기였다. PC사업 몰락 여진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서울 = 이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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