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금융허브 홍콩의 홍콩컨벤션전시센터에서 ‘아시아 : 성장을 위한 새 패러다임 만들기’란 주제 속에서 제9회 아시아금융포럼(AFF)은 화려한 막을 올렸다. 홍콩은 1년전 하루 평균 7000억 위안이던 위안화 청산 결제액이 연초 8000억 위안으로 늘었다. 홍콩과 중국 상하이(上海) 증시 간 교차거래를 허용하는 제도인 ‘후강퉁’시행 후 쏟아지는 중국 자본 속에서 세계의 금융허브로서 2단계 도약을 선포하는 자리였다.
렁춘잉(梁振英 ) 홍콩 행정장관은 “홍콩은 외국인 투자가 중국으로 가는 중요 창구이며 위안화 국제화의 중심지다”라며 “중국진출을 원한다면 아시아의 금융수도 홍콩으로 오라”고 말했다. 중국을 등에 업고 쑥쑥 커가고 있는 홍콩의 새로운 야심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것이다. 후강퉁을 전후헤 현재까지 홍콩에 유입된 자금은 약 1300억달러에 달한다.
내년 중국 반환 20년을 앞두고 있는 홍콩의 화려한 모습이다. 이날 렁 장관은 후강퉁에 이어 ‘선강퉁’(선전과 홍콩 증시 간 교차거래 허용)이 시행되면 뉴욕, 런던을 본격적으로 추격해보겠다는 공격적 의지까지 드러냈다.
올해 AFF 참가자 2600여명 중 중국 본토인들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는 예년에 비해 30% 이상 증가한 수치다.
중국의 최고 부호 부동산·엔터테인먼트 기업인 완다그룹 왕젠린 회장을 비롯해 본토의 걸출한 기업인들이 연사로 총출동해 자리를 빛냈다. 그러나 화려한 개막분위기는 채 하루를 가지 못했다.
다음날 홍콩달러화 가치는 8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급락하고,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홍콩H지수)는 7년 만에 장중 8000선이 붕괴됐다. 포럼 현장에선 강의를 듣는 청중들의 얼굴에는 스마트폰에 쏟아지는 증시폭락 뉴스로 우울한 그림자가 번져나갔다. 이런 청중들의 반응엔 아랑곳없이 연사로 나선 홍콩 K.C.첸 재정장관(한국의 금융위원장)은 홍콩의 향후 ‘먹거리’ 4대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무역·금융 서비스, 금융 서비스, 전문직 서비스, 도소매 및 관광서비스 등이다. 그는 “창의와 혁신이라는 키워드로 성장한 홍콩 경제에 난관은 없고, 이를 헤쳐나갈 역량이 있다”고 강조했다.
거대 시장 중국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에 홍콩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첸 장관의 연설이 끝나자 곧바로 청중들로부터 중국경제의 비관론과 출렁이는 변동성에 대한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첸 장관은 “지난 30여년 간 홍콩 금융시장에 잘 적용된 페그제를 바꿀 계획도, 의도도, 필요도 없다”고 강조했다. 아시아와 유럽 등 서방을 잇는 ‘슈퍼 커넥터’로서의 홍콩의 위상에 흔들림도 없고, 페그제 포기도 없다는 얘기다.
홍콩의 경제부총리인 존 창 홍콩 재정사 사장도 “이 또한 자연스러운 과정의 일부”라며 첸장관을 지원사격 했다. 중국이 단기간 내에 강도 높은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는데 따른 일시적 부작용이며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체질 개선에 도움이 될거라는 것이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충분한 외환보유고를 자랑하는 홍콩의 금융시스템이 이런 투기세력의 공격으로 당장 무너질 위기가 올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하드랜딩’(경착륙)은 피할지언정 ‘소프트랜딩’(연착륙)은 불가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현장에 참석한 다른 글로벌 유명인사들과 청중들은 중국 자본의 허브이면서 국제 금융시장으로 입지를 갖고 있는 홍콩의 위상에 모두 공감했다. 본토의 자본이 쏟아지면서 시장의 규모는 예전보다 훨씬 커지고 중국 최대 IT 기업 알리바바 등과 연계하면서 홍콩은 세계적 핀테크 허브로의 꿈까지 키워가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의 경쟁력 역시 여전하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이 주관하는 경제자유도 평가에서 홍콩은 여전히 21년째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중국의 최고 부호 부동산·엔터테인먼트 기업인 완다그룹 왕젠린 회장도 포럼 연사로 나와 “중국경제는 충분히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고 앞으로 더욱 강한 모습을 보일 것이며 홍콩은 중국과 서방을 있는 슈퍼커넥터가 될 것”이라고 힘을 실어줬다
문제는 지나치게 홍콩이 중국에 의존하기 시작했고 그런 여파가 이날 금융시장에 옮겨온 쇼크의 전염처럼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홍콩외환시장은 역내위안화 거래의 80%를 차지한다. 홍콩 증시에서 중국 본토 기업을 제외하면 주요 대형주는 은행주와 부동산주 뿐이다. 당연히 중국증시의 변동성리스크에 크게 노출된 상황이다.
이날 포럼만 봐도 상당 부분 강연과 연사자리를 중국 기업인들이 거의 ‘싹쓸이’하다시피했다. 포럼 행사장에서도 되레 홍콩당국이 중국의 입만 쳐다보는 눈치였다. 선강퉁 시행이 대표적이다.
홍콩 당국의 연사들은 중국 당국소속의 참석자들을 겨냥해 “선강퉁이 연내 반드시 시행되길 바란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지난해 시행예정됐던 선강퉁의 시행시기는 아직까지 실마리도 없다.
중국시장과 연결된 변동성은 크게 노출된 반면 향후 가장 큰 시너지효과를 일으킬 길목은 여전히 묘연한 셈이다.
아시안금융포럼이 막을 내린 뒤에도 현실은 홍콩정부 기대와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조지소로스를 비롯해 세계적 헤지펀드들은 위안화와 함께 홍콩 달러 약세에 대한 베팅을 멈추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와 홍콩 당국은 “절대 투기세력들이 승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러나 시장은 이를 믿지 않고 있다.
포럼장에서 중국본토인이 아닌 대부분 참석자들 반응도 차가웠다. 포럼이 시작된 후 9년째 참석하고 있다는 외국계 금융사 딜러 A씨는 “지난 연말 미국 금리 인상 이후 홍콩도 차라리 페그제(달러에 연동돼 금리를 인상하는 통화체제)를 포기하고 중국 위안화에 편입해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실물경제는 중국, 통화정책은 미국 연동된 홍콩의 아이러니를 겨냥한 얘기다. 아시안금융포럼에서 엿볼수 있었던 홍콩의 미래는 중국 반환직전인 20년전 처럼 불확실성의 먹구름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구름이 걷힌 다음 날 날이 활짝 개일지 더 센 비바람이 몰려 올지 어느 누구도 장담하긴 힘들다.
다만 확실한 사실은 올해 시시각각 변동성의 리스크는 홍콩을 끊임없이 괴롭힐 것이고 이런 리스크를 얼마나 잘 관리할 수 있는 가가 동-서양 자본을 잇는 수퍼커넥터로서 홍콩의 다음 20년 미래를 결정할 ‘가늠좌’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서울 = 이지용 기자 / 홍콩 = 장원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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