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미국과의 핵협상 타결과 경제제재 해제로 국제사회로 복귀하면서 이제 북한은 지구상의 유일한 고립국가로 남게 됐다. 국제사회 기대는 고립된 북한이 스스로 ‘장막’을 깨고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6일 북한의 기습 핵실험은 자발적 변화에 대한 기대를 처참히 무너뜨렸다. 한국정부는 ‘중국역할론’에 기댔지만 지금까지 중국의 대북 압박은 원론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 대북문제에 있어 한국은 중국의 지원사격을 기대해도 괜찮은 것일까. 북한에도 최근 경제제제가 풀린 이란식 해법이 통할까.
매일경제신문은 미국의 국제문제 전문가로 2000년부터 워싱턴 주요 씽크탱크중 하나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를 이끌고 있는 존 햄리 소장을 만나 의견을 들어봤다.
햄리 소장은 북핵문제와 관련한 중국역할론에 대해 “중국의 도움을 기대하기 보다는 한·미 동맹을 확고히 하는 편이 더 낫다”고 잘라 말했다. 한·중 관계가 좋아졌다고 해서 북한 핵실험을 비롯한 각종 도발에 중국이 적극적으로 대북 제재에 나서긴 힘들다는 것이다. 햄리 소장은 북한이 핵실험 등으로 잠시 중국과의 관계가 냉각되더라도 ‘혈맹관계’의 북·중 관계의 큰 틀은 깨기가 힘들다고 지적했다. 또 북한 스스로 개방 의지도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예컨대 지난 2013년 9월 시작된 이란 핵협상과정에선 이란의 전통 우방인 오만이 이란 최고지도부를 설득하는 중재 역할을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란 스스로 경제제재 해제와 개방에 대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햄리 소장은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상 중국과 일본은 어떤 상황에서도 한국을 온전한 자기 편으로도, 적으로도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한국은 도움을 기대하기 보다는 스스로 강해지고 독립적이 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중국 경사론’이라는 비판을 감수하고 중국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해 우호를 과시하면서 한국내에서는 중국이 대북문제에서 한국편에 서줄 것을 기대하지만 이는 ‘착각’이라고 햄리 소장은 말했다. 그는 “위기의 순간에서 마지막에 한국에 편에서도 도움이 되는 것은 결국 한미·동맹”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UN을 비롯해 국제사회가 추진하는 북한 제재에 대해서는 한국이 서두르지 말고 기다리라고 주문했다. 햄리 소장은 “북한은 고립되고 매우 취약한 나라며 북한 정부는 이미 국가로서 기능을 상실했다”면서 “주변국들과 협력하면서 인내하고 기다리면 북한은 스스로 무너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 미국 뉴욕타임즈도 19일 사설을 통해 “이란과의 핵협상 타결은 인내심있는 외교의 성과”라며 “북핵 문제 해결의 전례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최근 양국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타결한 것은 ‘시작’일뿐 ‘종착지’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일 관계는 역사가 아니라 냉엄한 현실에 가깝다”면서 “합의를 진전시켜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국민정서보다 양국 지도자와 정부 역할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국민은 감정적으로 대응하겠지만 현실적인 해결을 추구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라며 “양국 지도자에게 남은 숙제가 더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이슬람국가(IS) 지지세력의 테러가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오바마 정부의 중동정책을 지지했다. 공화당과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지상군 파견이나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현지 우호세력을 지원하는 현재 방식이 낫다는 것이다.
그는 “IS는 합법적이고 능력있는 정부가 없는 지역에서 자라났다”면서 “그 지역에 능력있고 정당한 정부가 들어서는 것이 IS를 궁극적으로 퇴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햄리 소장은 1950년 7월 미국 사우스다코다 출생으로 미국 내 손꼽히는 국제문제 전문가다. 미국 상·하원에서 두루 근무했으며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국방 차관을 지냈다. 오바마 대통령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한 후 2000년 1월부터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소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10월 박근혜 대통령은 CSIS를 방문해 햄리소장을 만나 동북아시아 안보환경에 대한 조언을 경청하기도 했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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