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6일 총통 선거를 앞두고 대만에선 선거운동 열기가 뜨겁다. 야당인 민진당은 지난달 20일 수도 타이페이에 위치한 당사 앞에서 공식 선거운동 시작을 알리는 대규모 행사를 열었다. 차이잉원 민진당 총통 후보가 연단에 오르자 지지자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일제히 손을 치켜올렸다. 이들은 깃발 대신 아담한 초록빛 돼지 저금통을 손에 들고있었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돼지저금통 모금’ 캠페인으로 풀뿌리 정치자금을 모아 집권여당 국민당에 맞서는 민진당의 선거전략을 소개했다.
민진당은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하기 전, 14만개가 넘는 돼지저금통을 제작해 전국 각지 지지자들에게 보냈다. 차이잉원 민진당 후보는 “돼지저금통이 대만을 바꿔놓을 것으로 믿는다”며 “16일 투표일 전까지 돼지저금통 모금으로 7억 대만달러(약 251억원) 가량의 자금을 모을 것”이라고 밝혔다.
차이잉원 후보는 4년 전 총통 선거에 출마했을 때도 ‘돼지저금통 모금’ 캠페인을 벌여 2억6000만 대만달러를 모은 경험이 있다. 이는 당시 민진당 전체 선거자금의 3분의 1에 달하는 액수다.
돼지저금통 모금은 타이난에 사는 세 쌍둥이 형제가 저금통에 푼돈을 모아 그녀에게 전달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당시만 해도 “정치자금 기부자는 성인이어야 한다”는 당국 유권해석에 막혀 돌려줘야 했다. 하지만 차이잉원은 성인들에게 돼지저금통을 받는 건 문제없다는 점에 착안해 캠페인을 다시 시작했다. 작년말 기준으로 민진당이 보유한 자산은 4억7900만 대만달러에 그쳤다. 차이잉원 후보가 계획대로 7억 대만달러를 모은다면 이는 당 전체 자산보다 더 많은 액수를 지지자들을 통해 모금하는 셈이 된다.
돈 모으기 외에 ‘서민 정당’ 이미지를 심는 효과도 있다. 대기업에서 정치자금을 챙기는 국민당과 달리 돼지저금통을 통해 서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운영된다는 느낌을 준다. 차이잉원 후보도 “새로운 정치 시대를 원하는 서민들이 돼지저금통을 통해 돈을 보내준다”며 “민진당은 대기업 자금은 일절 받지 않는 대신에 국민의 힘으로 운영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차이잉원은 46% 지지율을 기록한 반면 국민당 후보 주리룬은 16% 그쳤다. 정치평론가들은 돼지저금통이 대만 정치상황을 바꿔놓고 있다고 평가한다. 반면 국민당에선 돼지저금통 모금이 현행법 위반으로 “대놓고 익명으로 선거자금을 모으는 짓”이라며 평가절하하고 있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돼지저금통을 통한 ‘크라우드펀딩’이 민진당에 승리를 가져다 주고 대만 정치를 바꿔놓을지도 모른다”고 평가했다.
[문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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