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들에게 반(反) 이민 정서를 부각하며 유럽 각국 보수 정당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수백만명에 달하는 시리아 난민 수용 가능성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던 유권자들이 우익 보수진영에 지지표를 던지는 모양새다. 이로 인해 유럽 정치지형이 보수 일색으로 바뀌면서 유럽연합(EU) 회원국간 통행 제한 철폐를 내건 솅겐조약 무력화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치러진 스위스 총선에서 민족주의 성향 집권당인 스위스국민당(SVP)은 29.5% 득표율로 전체 하원 의석 200석 가운데 65석을 차지했다. 2011년 총선 보다 약 3% 증가한 것이고 의석수로는 11석이 늘었다. 중도 우파인 자유민주당과 합치면 과반에 가까운 98석이 보수당 몫으로 돌아가 스위스 의회는 중도좌파에서 중도우파 성향으로 기울게 됐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같은날 독일에서는 이민에 반대하는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찔린 헨리에테 레커 무소속 후보가 퀼른의 첫 여성 시장에 당선됐다. 레커 당선자는 퀼른시 난민 관련 서비스를 총괄했다는 이유로 목에 중상을 입었지만,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보수 성향 기독민주당(CDU) 지원을 받아왔다.
우익 보수파가 집권한 터키에 대해서도 그동안 장기 독재체제를 비난했던 유럽도 난민 문제를 거론하며 당근책을 내놓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8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을 방문해 터키가 유럽행 난민 유입을 막는데 적극 나선다면 터키의 숙원인 유럽연합(EU) 가입에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이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정상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터키의 EU가입과 유럽으로 여행하는 터키 시민에 대한 비자 제한 완화를 위한 협의에 속도를 내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난민들의 유럽행 관문인 터키는 대신 국경통제를 강화해 시리아 등으로부터의 난민유입을 억제하라는 게 EU 요구다. 터키는 앞서 EU에 시리아 난민을 200만명 넘게 수용한 터키의 역할 인정과 재정적 지원, 조속한 EU가입을 요구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끄는 AKP는 지난 6월 실시된 총선에서 13년만에 과반의석 확보 및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한 바 있다. 이 때문에 터키에서는 메르켈 총리의 ‘선물’이 정의개발당에 대한 지지 표시로 해석하고 있다.
시리아 난민이 가장 많이 유입되는 통로인 오스트리아에서도 우익의 선전이 주목을 끌고 있다. 20년 넘게 오스트리아 수도 빈 시장직을 지켜온 미하엘 호이플 시장(사회민주당)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난민 포용 정책에 반대하는 극우 자유당이 시장 선거에서 32.3%를 득표하며 창당 이래 가장 좋은 성과를 올렸기 때문이다. 두 후보간 득표율 차이는 7%포인트에 불과했다.
사상 초유의 난민 위기는 향후 치러질 유럽 주요국 선거에서도 우파에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오는 12월 프랑스 노르파드칼레피카르디주 지방선거에 출마할 것으로 보이는 극우정당 국민전선(FN) 당수 마린 르펜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이 지역은 원래 중도좌파 성향인 사회당 텃밭이었으나, ‘뉴 정글’이라 불리는 대규모 난민 대피소가 이 지역에 들어서면서 반이민정서가 강해지고 있다.
또 오는 25일 총선을 앞둔 보수계열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유럽으로 쏟아져들어오는 난민들이 전염병을 몰고올 수 있다”며 “보건뿐 아니라 재정, 물리적 안전도 중요하지만 국민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말해 자신이 속한 우파 정당인 ‘법과 정의당’에 힘을 실어줬다.
그밖에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난민 문제를 종교·인종 갈등과 결부시켜 지지율 반등 수단으로 삼고 있고, 그리스의 극우 정당인 황금새벽당은 지난달 조기 총선에서 의회 300석 중 18석을 차지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같은 맥락에서 향후 유럽 국가 간 국경을 검문 없이 통과하도록 규정한 ‘솅겐조약’의 무력화 가능성을 높일 수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이미 헝가리가 국경에 장벽을 설치했고, 크로아티아 역시 국경을 폐쇄하는 등 ‘솅겐조약’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유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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