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외무장관, 법무상, 상원의원... 화려한 정치경력을 가진 가렛 에반스 전 장관. 그는 호주 역사상 가장 성공한 외무장관 중 한명으로 꼽힌다. 그런 그가 비핵화 지지자로 변신해 지난 14일 한국을 찾아 매일경제와 인터뷰를 했다.
1988년부터 1996년까지 8년간 외무장관 자리를 지켰던 그는 미국과 영국과의 관계에만 의존하던 호주의 기존 외교방식에서 벗어나 아시아 국가들, 특히 중국과 인도네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했다. 가까운 미래에 아시아 국가들이 글로벌 사회에서 비대한 영향력을 가질 것이라는 점을 예상한 것이다. 에반스 전 장관은 ‘중간 파워’와 ‘틈새 외교’ 정책을 펼쳐 호주의 국제적 위상을 안정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그는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APEC)와 아세안 지역 포럼(AFR) 설립에 크게 기여했다.
에반스 전 장관은 오랜 정치생활을 접고 호주국립대(ANU) 명예교수로서 비핵화 세상을 위해 국제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저서 ‘핵무기:2015년 진행 상황’ 출판을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외무장관 재임당시부터 핵 안보에 큰 관심을 보였다. 지난 1995년 핵무기 철폐를 위한 ‘캔버라 위원회’를 만들어 UN총회에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 같은 경험을 살려 쓴 이 책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악화된 미국과 러시아 관계, 각국의 미사일 배치관련 의견 충돌 등 비핵화 세상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현 국제사회를 지적한다.
그는 한국과 중국, 일본의 국방안보 분야 ‘뜨거운 감자’로 등장한 사드와 관련해 “미국의 가장 큰 전략의 구멍은 사드배치 명분을 북한 핵에 대한 견제라는 것을 앞장 세우면서도 가장 큰 이해 당사자인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설득에 실패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런 협상의 실패로 인해 아시아 지역에서 불필요한 냉전분위기를 촉발시키는 동시에 무기 배치 등 군비 경쟁만 촉발시키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그는 “사드 배치는 중국과 러시아가 또 다른 무기를 개발하도록 유도할 뿐”이라며 “사드 배치로 인해 미사일·핵무기 개발이 마치 런닝머신처럼 끝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에반스 전 장관은 북한의 핵사용 위험과 관련해 낙관적 전망을 내놨다. 그는 “북한이 실수 하지 않는 이상 핵을 무기로 실제 사용할 확률은 0%에 가깝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에선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에 진전을 보였다는 보도가 쏟아지면서 북한핵에 대한 경계감이 고조되고 있다.
에반스 전 장관은 “북한은 지속적으로 핵 개발을 해왔지만 실제로 핵을 사용한 적은 한번도 없다. 즉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을 포함한 전 세계가 핵무기 사용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인류는 수많은 전쟁을 겪었으며 핵무기를 사용하면 보복이 닥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북한의 핵무기 사용은 컴퓨터 시스템상의 에러, 소통의 실수, 순간의 잘못된 판단 등으로 인한 ‘사고’가 아닌 이상 의도적으로 일어날 경우는 없다는 것이며 한국 또한 이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핵 무기가 순간의 실수로 사용되는 것을 막으려면 상향식(bottom-up pressure) 압박, 집단 압력(peer pressure), 하향식(top-down pressure) 등 3단계 압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상향식 압력이란 전세계 시민들이 NGO 활동 등을 통해 비핵화 법안을 촉구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핵 보유국에 심리적 위압감을 느끼도록 유하는 것을 말한다. 또 미국, 중국과 같은 강대국에 외교적으로 적극 호소해 비핵화 움직임 형성에 힘쓰는 집단압력을 넣는 동시에 세계최대 강대국 미국이 전면에 나서 비핵화 법안을 통과시키는 하향식 단계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결국 북한 핵은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게 아니라 전세계 국민들의 열망과 국가·외교적 노력이 결합된 총력을 쏟아야 해결의 길이 열릴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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