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내 예비경선(프라이머리)에서 뜻하지 않은 패배를 당한 에릭 캔터(버지니아) 하원 원내대표가 11일(현지시간) 사의를 표명했다.
전날 치러진 버지니아주 예비 경선에서 극단적 보수주의 운동 세력인 티파티가 지지하는 무명의 데이비드 브랫 후보에게 밀린 캔터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내달 31일 사임할 뜻을 밝혔다.
그는 "모든 정치는 지역에서 시작되며 나는 표가 모자랐고 지역구 유권자들이 다른 후보를 선출했다"고 말했다. 다만 남은 하원의원 임기는 채우겠다고 전했다.
미국은 11월 4일 하원의원 전원과 상원의원 3분의 1일 새로 뽑는 중간선거를 치른다. 제114대 새 의회는 내년 2월 개원한다.
이에 따라 하원 공화당은 11월 예비선거를 불과 몇 개월 앞두고 지도부를 새로 구성해야 해 혼란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유대계이자 7선인 캔터 원내대표는 올해 중간선거 이후 '넘버1' 자리를 내줄 것으로 점쳐지는 존 베이너(오하이오) 하원의장의 유력한 후임 후보였다.
그런 그가 본선은커녕 예선 문턱도 넘지 못하고 좌초함에 따라 공화당은 하원 다수 의석을 유지해야 할 중간선거를 코앞에 두고 당내 권력 투쟁에 휩싸이게 됐다.
베이너 의장은 거취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있으나 당분간 자리를 지킬 공산이 크다.
그는 이날 성명에서 "캔터 원내대표는 좋은 친구, 훌륭한 지도자이고 내가 매일 의지하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같은 오하이오 출신의 스티브 스타이버스 하원의원은 "당의 안정과 연속성 유지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하면서 베이너 의장의 유임을 지지했다.
공화당은 당장 이달 19일 의원총회를 열어 새 원내대표를 선출할 예정이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당내 서열 3위인 케빈 매카시(캘리포니아) 원내총무가 자연스럽게 원내대표로 한 계단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 가운데 상당수 의원이 경합할 것으로 점쳐진다.
캔터 원내대표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매카시 총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매카시 총무 측은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으나 일부 동료 의원에게 출마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와 2010년 원내총무직을 놓고 겨룬 오랜 정적이자 하원 규칙위원회 위원장인 피트 세션스(텍사스) 하원의원이 일단 그와 맞붙을 것으로 보인다.
세션스 의원은 이날 기자들에게 자기가 원내대표가 되면 멕시코와의 국경 경비를 강화하는 데 힘을 쏟겠다고 공언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민법 개혁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가 티파티 세력으로부터 역풍을 맞은 캔터 원내대표와의 차별화에 나선 셈이다.
수석 원내부총무인 피터 로스캠(일리노이) 하원의원은 매카시 의원이 원내대표직에 출마할 경우 원내총무직에 도전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티브 스캘리스(루이지애나), 케이시 맥모리스 로저스(워싱턴), 젭 헨살링(텍사스), 짐 조던(오하이오) 하원의원 등도 벌써부터 지지 세(勢)를 모으는 등 자천타천 당 지도부 편입을 꾀하고 있다.
피터 킹(뉴욕) 하원의원은 이날 MSNBC 방송에 출연해 "이미 엊저녁 몇몇 동료 의원들로부터 지지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받았다. (당직을 놓고) 선거운동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나섰던 폴 라이언(위스콘신) 하원의원은 당직에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하원 예산위원장인 그는 이날 "캔터 원내대표의 패배는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라며 "당내 선출직은 내 관심 밖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한편 민주당은 캔터 원내대표의 낙마를 계기로 패배가 예상됐던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장악하기 위한 전략 수립에 착수했다.
낸시 펠로시(캘리포니아)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캔터는 오랫동안 공화당 극단주의 정책과 '식물 의회', 위기 제조의 얼굴이었다"며 "그럼에도 공화당을 더 오른쪽(극우 보수주의)으로 당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이번 예비선거는 티파티의 승리"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중간선거에서 완전히 새로운 상황(new ballgame)이 연출됐다"고 덧붙였다.
[매경닷컴 속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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